수능이 치러진 이날 잠시 학업을 제쳐두고 오랜만에 해방감을 만끽하는 덕일까, 또래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극장을 찾은 학생들의 표정은 몹시 밝아 보인다.
시간에 맞춰 상영관에 들어가니 객석의 3분의 2가량이 차 있다.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도 대부분 10대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그룹 엑소의 멤버 도경수 군의 힘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상영관 내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도 점차 사그라진다.
하루 아침에 부당해고를 당해 길거리로 나앉게 된 대형마트 비정규직 직원들의 이야기라는, 다소 무거울 법한 소재는 사실감 넘치는 배우들의 말과 몸짓을 잔잔하게 담아낸 카메라의 움직임 덕에 부담감을 던 모습이다. 중간중간 귓가를 울리는 따뜻하고 다소 경쾌하기까지 한 멜로디의 음악도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그래도 1시간 40여 분의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자세는 사뭇 진지해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대다수 관객들이 잔상을 곱씹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영관을 먼저 빠져나와 조용한 분위기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을 지켜보던 중 모녀로 보이는 두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이 영화 카트,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어머니 이모(61) 씨는 "딸이 교사인데 이 근방에 수능 감독관으로 왔다가 '영화나 한 편 보자'고 해서 극장을 찾았다"며 "카트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봤고, 제목에서 '홈에버 얘기인가' 생각했는데 '실화에 바탕을 뒀다'는 첫 자막을 보고 '맞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홈에버 사태가 있을 당시 서울 잠원동 부근에 살았던지라 지나다니면서 실제 농성 현장을 수시로 접했다고 했다.
그는 "그때 우리 친척 집이 그 농성장에 인접해 있었는데, 어느 날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에 경찰들이 와서 노동자들을 잡아가는 소리에 그곳 주민들이 다 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 시기 한 인터뷰에서 그곳 노동자가 '한 달에 얼마 받냐'는 질문에 '100만 원'인가 받는다고 대답하는 걸 보면서 '그 돈에 그렇게 목숨을 거냐'는 철없는 생각을 하던 때"라고 말했다.
이 씨는 현재 영화 속 인물들처럼 한 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고 했다. 남편을 잃은 뒤 시작한 것인데, 적은 월급이지만 학교라 그런지 영화 속 사람들처럼 억울한 일은 없단다.
하지만 "모든 세대가 살기 힘든 이 시대에 영화에서와 같은 처지에 놓이면 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이 씨는 전했다.
그에게 극중 인상적인 장면을 물었다. "염정아 씨가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커다란 담벼락 앞에 서 있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현실이라는 높다란 벽 앞에서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이 시대 약자들의 처지를 본 것은 아닐까.
딸 박모(31) 씨는 교사의 입장에서인지 극중 알바비를 떼이는 학생의 처지를 먼저 꺼내 들었다.
박 씨는 "실제 학생들이 알바를 하고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잘 드러냈다"며 "학생들도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중 대기업 면접에 50여 차례나 떨어진 또래 캐릭터에 공감이 가지 않더냐고 묻자 그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건넸다.
"사실 최근에 공무원 노조 궐기대회가 있을 때 저랑 제 친구가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평소 그런 시위에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나간다는 게 미안하고 해서 함께하지 못했어요. 대회에 참가했던 한 언니가 '너희라도 나와야지'라고 했던 말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죠."
박 씨는 극중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대사를 듣고는 시위 현장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자신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단다.
그는 "시위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접하면서 막연하게 '억울하겠다'는 생각만 했었다"며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사를 하나 접하더라도 한 번 더 클릭해서 보고, 그런 목소리에 더욱 귀기울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