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석 인사청문회에서 난데없는 '벙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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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기석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벙커'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했다. 이는 법조계의 은어로 '후배 법관이나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판사' 정도의 의미다. 벙커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골프장의 모래구덩이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이 질의 과정에서 이 벙커를 거론했다. 박 의원은 "헬스클럽 회원권, 주식투자, 아파트까지 모두 삼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후보자는 '삼성 장학생'"이라며 "그런데 밖에서는 후보자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 벙커다"라고 발언했다.

이어 "후보자가 모두 인사말에서 '지금까지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세간에서 '벙커다, 삼성장학생이다' 한다"면서 "지금까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한 가지만 말해보라"고 질의했다.


서 후보자는 즉답을 못한 채 고심을 거듭했다. 정확히 23초간 뜸을 들인 뒤 그는 "제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중에는 벙커라는 얘기를 듣는 것도 하나 있겠다"고 답했다.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마저 박 의원 질의 뒤 서 후보자에게 '벙커의 의미가 뭐냐'고 '확인사살' 격의 질문을 던졌다. 서 후보자는 굳은 표정으로 "법원 내에서는 (그 사람과) 함께 근무하면 상당히 힘이 든다는 그런 뜻으로 통한다"고 답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벙커는 과중한 업무를 유발하는 '업무적 벙커'와 업무와 무관하게 동료들을 괴롭히는 '인격적 벙커'로 나뉜다.

한 현직 판사는 "서 후보자는 인격적 문제보다는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에 벙커로 통하는 줄 안다"며 "어쨌든 벙커는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기 때문에 지칭된 사람 입장에서는 유쾌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야당의 벙커 공세가 나오자 여당이 옹호에 나섰다. 바로 뒤 질의에 나선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그런데 그 벙커라는 게 나쁜 거냐. 벙커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서 후보자는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재판에 임하다보니, 퇴근시간이 보통 밤 12시였다"며 "토요일,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 불편했나 보다. 그래서 (나에 대해)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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