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진보를 수렁에 빠뜨린 그 연쇄 살인 사건

<적군파> /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388쪽 / 1만 6,000원

평균 나이 23.3세의 젊은 남녀 31명이 산속에 비밀 기지를 꾸렸다. 그들의 목적은 혁명, 그런데 두 달 만에 12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들을 때리고 찔러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나머지 19명, 그들의 동지였다.

이것이 1972년 3월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은 '연합적군 숙청 사건'. 일본 사회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금기어로 만든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좌파 활동가들은 좌파 내부의 자멸적 광란에 망연자실했다. 한때 운동의 지지자였던 이들이 잇따라 등을 돌렸다.


이처럼 일본 진보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급진 학생 운동 조직 '적군파'. 이 단체와 그들이 저지른 숙청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 시선으로 추적한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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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교양인)는 사회학자이자 일본 좌파 운동 연구의 권위자인 퍼트리샤 스테인호프가 20여 년 동안 현장을 발로 뛰며 적군파 멤버와 숙청 사건의 생존자 및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자료를 탐독하며 쓴 책이다.

지금은 정치적 대자보 한 장 보기 힘들지만, 1960년대 말 일본 대학 캠퍼스는 학생 운동으로 불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헬멧과 각목으로 무장하고 강의실을 뛰쳐나와 경찰과 부딪쳤다. 베트남 전쟁, 일본 내 미군 기지 건설, 미국의 신탁 통치를 받던 오키나와 문제, 미농촌의 난개발, 대학 당국의 부패 등 맞서 싸울 사회 문제는 차고 넘쳤다. 시민 사회도 열정적 젊은이들의 싸움에 적극 동조했다.

그러나 이 투쟁의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으로 학생 운동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31명의 청년들이 산속에서 서로 죽이고 죽어 두 달 만에 12명이 희생된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 사건. 전원이 합세하여 동지를 때리고 찔러 살해했다. 동생이 형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희생자 중에는 고등학생도,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

저자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또는 정신 이상자의 소행으로 매도되기 십상인 연합적군 숙청 사건에서 인간 심리의 보편성을 발견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154쪽)

"숙청은 다름 아닌 사회적 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326쪽)

"인간은 정신적 밀실 속에서라면 커다란 공포를 안고서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단 그러려면 개인적인 책임에서 해방해 줄 사상이라는 힘이 밀실의 문을 꾹 밀어 닫아줄 필요가 있다. 사상을 끊임없이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동지에게 그처럼 잔인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323쪽)

책은 '만약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다를 수 있었을까?'라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묻게 만든다.

이처럼 적군파를 낳은 사회적 배경과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일본 현지에서도 드물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에 대해 "사회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적군파를 정면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서이자, 적군파의 전모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길잡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388쪽 /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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