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1972년 3월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은 '연합적군 숙청 사건'. 일본 사회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금기어로 만든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좌파 활동가들은 좌파 내부의 자멸적 광란에 망연자실했다. 한때 운동의 지지자였던 이들이 잇따라 등을 돌렸다.
이처럼 일본 진보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급진 학생 운동 조직 '적군파'. 이 단체와 그들이 저지른 숙청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 시선으로 추적한 책이 나왔다.
지금은 정치적 대자보 한 장 보기 힘들지만, 1960년대 말 일본 대학 캠퍼스는 학생 운동으로 불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헬멧과 각목으로 무장하고 강의실을 뛰쳐나와 경찰과 부딪쳤다. 베트남 전쟁, 일본 내 미군 기지 건설, 미국의 신탁 통치를 받던 오키나와 문제, 미농촌의 난개발, 대학 당국의 부패 등 맞서 싸울 사회 문제는 차고 넘쳤다. 시민 사회도 열정적 젊은이들의 싸움에 적극 동조했다.
그러나 이 투쟁의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으로 학생 운동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31명의 청년들이 산속에서 서로 죽이고 죽어 두 달 만에 12명이 희생된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 사건. 전원이 합세하여 동지를 때리고 찔러 살해했다. 동생이 형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희생자 중에는 고등학생도,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
저자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또는 정신 이상자의 소행으로 매도되기 십상인 연합적군 숙청 사건에서 인간 심리의 보편성을 발견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154쪽)
"숙청은 다름 아닌 사회적 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326쪽)
"인간은 정신적 밀실 속에서라면 커다란 공포를 안고서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단 그러려면 개인적인 책임에서 해방해 줄 사상이라는 힘이 밀실의 문을 꾹 밀어 닫아줄 필요가 있다. 사상을 끊임없이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동지에게 그처럼 잔인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323쪽)
책은 '만약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다를 수 있었을까?'라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묻게 만든다.
이처럼 적군파를 낳은 사회적 배경과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일본 현지에서도 드물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에 대해 "사회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적군파를 정면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서이자, 적군파의 전모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길잡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388쪽 / 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