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은 할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언젠간 큰돈이 될 거라는 믿음에 지금까지 보관했다. 태극기 그림과 '1981ㆍ한국은행ㆍ100' 양각이 반짝이는 황동 빛 주화였다.
1981년엔 그 돈으로 라면 한 봉지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 후 이 동전을 주고 한국은행에서 손에 바꿔 쥔 건 은색 동전 하나였다. 깨끗한 100원짜리 달랑 하나. "가끔 이런 일도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고요."창구 직원이 멋쩍게 말했다. "길 건너 회현동 수집상에 가면 잘 쳐준다고 말씀드려도 듣질 않으세요. 기념주화에 한국은행이라고 쓰여 있으니까."
기념주화는 수집 시장에서 보통 액면가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 희소해서 그렇다. 수집품으로서 인기도 많다. 몇몇 금화는 수십만~수백만 원에도 거래된다.
그런데 한은에서 바꾸면 희소가치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딱 동전에 적힌 만큼만교환해줘서다. 심지어 금화라도 그렇다. 11일 한은에 따르면 이렇게 교환된 액수가 53억원(누적)이 넘는다. 모두 액면가 기준이다.
건국 이래 2012년 상반기까지 발행된 기념주화는 모두 서른 종이다. '대한민국 반만년'부터 '핵안보정상회의'까지 발행 이유는 제각각이다. 액면가도 100원에서 5만원까지 다양하다. 금화나 은화도 있지만 백동이나 황동, 니켈로도 만든다. 개수로 치면 총 3천16만개다. 다 합해보면 1천143억원에 달한다. 6월 현재 발행잔액이 1천89억원이니 그동안 53억원이 넘는 주화가 액면가로 교환된 셈이다. 교환 이유도 다양하다.
할머니처럼 잘 모르는 사례가 가장 많다. '무지'형이다. 수집상까지 가기 멀다는 '귀차니스트(귀찮음을 쉽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외국으로 이민 가는데 굳이 비싸게 팔아 무엇하겠냐는 '쉬크(도도)'형이 있는가하면 액면가만 준단 걸 모르고 왔다가 화가 나 바닥에 다 내던지고 갔다는 '터프가이' 이야기도 전해진다.
할머니가 교환하려 한 100원짜리는 1981년산 제5공화국 기념주화다. 과잉 발행으로 가장 가치가 낮은 주화로 꼽힌다. 한은 관계자는 "당시엔 총량을 정하지 않고 막 팔아 그렇지만 요즘은 발행량을 정해놓기 때문에 이런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할머니의 100원 주화는 회현동 수집상에서 350원 정도에 거래된다.
기념주화는 일상생활에서 쓰는데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 한은이 발행한 법정통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이 물가관리를 위해 조절하는 통화량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유동성이 없어서다.
한은은 11일 서른한 번째 기념주화 예약판매를 시작했다. 제주에서 열리는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를 기념하는 동전이다. 5만원짜리 은화만 2만개 팔며 가격은 개당 5만7천원이다. 인터넷과 농협은행·우리은행 창구에서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