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고등학교 2학년 박모(17) 군은 담보나 이자 없이 대출이 가능하다는 'OO캐시'의 대출 문자를 받았다.
'나도 대출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 박 군은 200만원을 대출받기 위해 호기심에 통화 버튼을 눌렀고, 상담원은 "휴대전화 소액 결제를 통해 대출을 해 준다"며 박 군의 이름과 주민번호, 통신사를 캐물었다.
이어 상담원은 "휴대전화만으로 대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휴대폰 신용을 꼭 확인해야 한다"며 "결제를 해 신용을 알아볼테니 발송되는 인증 번호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업체는 "1차 결제 30만 원 중 신용 확인 수수료 12만 5000원만 내면 나머지 돈은 이자 없이 가져갈 수 있다"며 박 군을 설득했다. 상담원은 또, 신용 확인 수수료는 처음 소액결제 30만원 때만 물어야 할 뿐 나머지 대출금 170만원에 대해서는 수수료도 이자도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상담원의 달콤한 제안에 박 군은 인증번호를 불러줬고, 통화가 끝난 뒤 박 군의 통장엔 수수료를 제외한 돈 17만 5000원이 입금됐다. 그러나 돈이 입금된 이후업체와의 연락은 거기서 끝이었다.
'다음달에 들어온다'던 대출금은 감감무소식이었고 대신 '신용 등급 확인차 필요하다'던 휴대전화 소액결제 30만 원 청구서만 박 군 앞으로 남겨졌다.
휴대전화 소액결제 대출 문자에 속아 넘어간 건 박 군 뿐만이 아니다. 직장인 이모(32) 씨도 아무 의심 없이 상담원에게 휴대전화 인증번호를 불러줬다.
"급한 사람 입장에서는 모든 걸 다 믿었죠. 근데 인증번호를 넘겨준 뒤로는 연락이 안되더라고요."
대출 사기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대출을 문의하는 피해자에게 인증번호를 빼낸 뒤 신용확인비 명목으로 휴대전화 소액 결제를 유도해 돈을 가로챈 일당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 1일 경찰에 붙잡힌 유 모(32) 씨 등 20명은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두 달 동안 2천여명으로부터 모두 5억 1700만 원의 부당 이득을 올렸다.
이들은 하루에 3만건의 문자를 무작위로 발송해 문자 메시지를 보고 연락해오는 사람들에게 "휴대전화로 대출을 하려면 우선 1차 결제를 통해 신용을 확인해야 한다"고 결제를 유도했다.
이들은 유명 인터넷 거래 사이트 등에 물품을 허위로 게재해 놓은 뒤 피해자로부터 휴대전화 인증번호를 빼내 물품을 결제하는 방식으로 1인당 12만 5천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가로챘다.
CBS가 입수한 유 씨 일당의 <대출고객 응대 매뉴얼>에 따르면 "고객님의 휴대폰에는 신용카드처럼 최고 30만 원까지 인터넷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있는데 이 금액을 결제해서 신용도를 확인한다. 최초결제시 수수료가 발생되지만 이후에는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피해자를 안심시켰다.
이들은 또 1차 결제를 꺼려하는 피해자들에게 "휴대전화 신용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결제를 무조건 진행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피해자들은 1차 수수료만 내면 무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업체의 말에 속아 의심 없이 결제 인증번호를 불러줬다.
장사가 어려워 대출을 받으려 전화를 걸었다는 피해자 황 모(57) 씨는 "인증을 해야 신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알아볼 수 있다길래 아무 생각 없이 인증번호를 불러줬다"며 "그러나 돈이 입금된 후엔 전화도 안 받고 대출금도 감감무소식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부업자 유 씨 등을 검거한 부천 원미경찰서 관계자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인증번호를 불러준다고 돈이 나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며 "휴대전화 인증번호는 결제의 수단이기 때문에 함부로 알려줘선 절대 안 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