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교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A군 부모는 학교측에 이 사실을 알리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폭대위)도 열어 줄 것을 요청했다.
아들을 괴롭히던 가해 학생 한 명은 전학조치 됐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그대로였고 폭대위 개최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에도 A군에 대한 아이들의 괴롭힘은 끊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부모는 결국 지난해 9월 A군을 인근 학교로 전학시켜야 했다.
그런데 A군 부모는 최근 그렇게도 요구하던 폭대위가 아들이 전학하기 직전인 9월 2일 자신도 모르게 열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폭대위가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B군을 직접 가해에 가담한 정황이 없다는 이유로 선도위로 넘겨 교내봉사 5일이라는 가벼운 징계 조치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더구나 A군 부모는 이 사실도 지난해 12월 말 학교를 직접 방문해서야 전달받았다.
그런데 더 기가 찬 일을 며칠 전 알게 됐다. 아들이 자신을 폭행했다며 지목한 가해학생 중 한 명인 B군의 어머니가 지난해 11월 차기 폭대위 운영위원으로 선출됐다는 것이었다.
이 때는 관할 교육청인 강남교육지원청에 담임 교사와 학생부장의 직무유기 등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서울중앙지검에 이들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뒤였다.
## 학교 "폭대위 개최 사실 통보"...문제 없어
이에 대해 학교측은 폭대위 개최 사실을 미리 전화로 통보했고, A씨가 불참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선도위원회에 넘긴 것도 B군 등이 가해하지 않았고, 동영상 등을 보면서 A군이 직접 퇴폐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학교측은 폭대위 운영위원으로 B군 어머니가 포함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학부모 50%를 채워야 하는 현실에서 운영위원 참여율이 워낙 저조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학교 관계자는 그러면서 "원래도 폭대위에는 담임교사를 포함해 피해학생 관련자들을 가급적 참석시키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학교폭력 전문가는 피해학생 없이 폭대위가 열린 것부터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설사 폭대위가 피해학생 부모가 참여하지 않고 개최됐다고 해도 통보해야 할 의무는 있다.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 18조 5항에는 '자치위원회가 분쟁조정을 하고자 할 때에는 이를 피해학생, 가해학생 및 보호자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 강남교육지원청 등 관계기관 허울한 대응...뒤늦게 문제 발견하고 해당교사 징계
사정이 이럼에도 관계기관의 대응은 부실하고 허술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시교육청은 A군 부모 신고로 학교폭력 관련 조사를 진행했지만 이런 속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A씨가 신문고, 감사원 등을 통해 문제를 계속 제기하자 시교육청이 나서 조사를 해 고 이 학교 교사 5명에게 징계 또는 경고조치를 내렸다.
시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가해학생 부모가 만약 A군 관련 폭대위 진행 과정에 운영위원으로 참석했다면 문제겠지만, 전학을 간 이후 조사가 진행될 때 포함됐다. 살펴볼 필요는 있겠지만 관심 밖이었던 게 사실"이라며 강남지원청의 부주의를 인정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뒷짐만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A씨가 해당 시교육청 장학사에 대한 직무유기 여부 조사를 요청했지만, 본인을 조사하게 하는 등 엉뚱한 지시를 내려보내거나 담당 부서도 제대로 지정하지 못했다.
답답해진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조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복잡하다'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받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에 A군 부모들은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검에 교사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고 사건은 관할 경찰서 지능팀에 배당됐다.
하지만 여기서도 사립학교 교원은 공무원이 아니어서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A씨는 서울중앙지검에 15일 가해학생 10여 명을 폭행 혐의로, 교장.담임 교사는 방조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한편 이 학교 교장은 이달 말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학교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