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분위기 좋아하네, 초상집이야" 한우농가의 한숨 나는 설 나기

사료값 2년 동안 2배 이상 올라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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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대목이여, 원래 구정 앞두고 한우 가격이 올라가야하는데 거꾸로 내려가니 갑갑해 미치지. 작년하고 비교하면 반값 보다 더 떨어졌어. 680~700만원짜리 소가 이번 달에 280만원 나왔다는 거 아녀."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대농리에서 한우 50두를 키우고 있는 박정근(53)씨는 한우에 '한'자만 나와도 한숨이 나온다.

작년 겨울엔 구제역 때문에 매일매일 소독하느라 힘이 빠졌고, 올 겨울엔 소 값이 계속 떨어져 살맛이 안 난다.

박 씨는 요즘 힘든 정도가 아니라 "죽을 맛"이라며 담배를 물었다.

사료 값은 2년 동안 2배 이상 비싸졌지만 소 출하단가는 1년전에 비해 반값도 못받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150만원을 주고 7개월짜리 송아지를 사서 출하시키려면 2년을 키워야 한다.

2년 동안 소에 들어가는 사료 값만 280만원 이상. 볏짚도 먹여야 하고 '안성마춤'이라는 안성시의 한우 브랜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네랄, 생균제 등을 먹여 면역 체계도 늘리려면 소 1마리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30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여기에 송아지 값을 포함하면 생산 원가만 450만원 이상인데 현재 한우 출하 단가가 300만원 이하로 내려가니 박 씨와 같은 한우 농가는 요즘 설 분위기가 아니라 초상집 분위기가 난다.

당연히 인건비는 생각도 못한다. 사료 값만 나와도 천만다행이다. 그래서 대를 잇겠다며 축산대학에 들어간다는 아들에게 절대 안된다고 호통쳐 못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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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를 키워 두 딸을 모두 대학까지 보낸 박 씨지만 요즘 같아선 한우를 계속 키워야 할지 고민이다.

두 딸 모두 서울로 회사를 다니게 돼 방을 얻어줬다. 마음 같아선 전세를 얻어주고 싶었지만 소 값이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사글세 2000만원에 50만원 짜리 방을 구해줄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소를 다 팔아버리라고 한다. 소 값은 계속 떨어지고 희망도 없으니까 벼농사를 짓던지 경비를 하라는 것이다.

폭락하는 한우 값에 항의하기 위해 소떼를 몰고 서울로 올라가 항의시위를 벌일 계획도 짜 봤지만 경찰이 집에서 한발짝도 못나가게 해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박 씨는 소를 포기할 수가 없다. 소는 곧 박 씨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송아지를 키울 때는 1주일, 2주일 동안 추울까봐 거실에 헌 이불을 깔고 안아서 젖을 먹여 키운 적도 있다.

늘 같이 생활한 식구나 다름없어 우사가 비면 쓸쓸해진다. 잠도 안 오고 힘도 빠질 뿐 아니라 가슴도 저미곤 한다. 83년부터 소 10마리로 시작해 지금까지 축사를 늘리고 개체수를 늘렸던 박 씨다.

지난 해에는 아들이 군대를 가 학비가 들지 않아 6,000만원을 대출받아 트랙터도 사고 소도 100마리까지 늘려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한미 FTA를 전후로 소 값이 점차 떨어지더니 11월쯤이면 구정 때문이라도 올라야 할 값이 거꾸로 폭락하니 답답할 뿐.

박 씨는 전라도에서 사료를 주지 못해 소를 다 굶어 죽인 농민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싶어. 얼마나 갑갑했으면... 나 같으면 소를 차에 실어서 밤에 서울 한복판에 쏟아놓고 올거여. 동반자가 말라 죽는 꼴을 보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그러면 119나 정부에서 어디다 사육해 굶어 죽지는 않을 거 아녀"

박 씨 뿐만이 아니다. 인근에서 100두를 기르던 후배는 200두로 늘리고 우사도 5억을 대출 받아 지었지만 소 값이 곤두박질쳐 결국 우사를 내놓았다. 대를 이어 한우를 키우겠다는 아들은 군대에 갔다. 현재는 70두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 2명은 견디다 견디다 한우 농사를 접었다.

박 씨는 "지금 한우를 사봤자 뻔히 돈이 깨지는 걸 알기 때문에 살 수 없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3일 앞으로 다가온 설에는 서울에 있던 딸 둘이 돌아와 같은 동네에 사는 아버님 댁에 찾아볼 생각이다.

처갓집도 가야하고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도 마련해야 하는데 소가 돈이 안 되니 요즘 같아선 친구들도 안 만나고 집에서 김치에 소주만 마신다.

박 씨의 새해 소망은 소박했다. 소 값이 평균치라도 올라섰으면 좋겠다는 것. 허리 디스크에 팔까지 수술하면서 온몸을 바쳐 소를 키웠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축산업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은 정부가 속상하기만 하다.

더욱 추워진다는 올해 설. 박 씨와 같은 처지의 한우 농가들은 마음까지 시린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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