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노은설은 나없이 잘 살고 있을까요?"(인터뷰)

[노컷인터뷰] '보스를 지켜라' 노은설로 살았던 시간..."꿈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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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를 만났지만 결코 신데렐라는 아니다. 왕자님이라고 하기엔 약간 하자있는 바보온달을 만나 당당히 “내가 갑이다”를 외친 노은설. 대한민국 드라마사에서 전무후무한 이 캐릭터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최강희(34)다.

그동안 최강희만큼 다양하고 스펙터클한 인물들을 연기했던 여배우는 없지 싶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나만큼 사람 많이 죽인 여자는 없을 테고(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남자에 대해 다 아는 척 하고(영화 ‘쩨쩨한 로맨스’), 모순덩어리에 속물이지만 밉지 않은(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누군가가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싶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도 한 건(?)했다. 지난 9월 29일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보스를 지켜라’(극본 권기영, 연출 손정현)에서 최강희는 보스를 지키는 비서 노은설로 분했다. 이 작품에서 최강희는 주특기인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을 십분 살리면서도 한 때 놀았던 날라리 싸움꾼에 88만원 세대, 불의에 대항하는 정의의 사도까지 덧입었다.

평범하지만 평범치 않은 ‘노은설’이란 옷을 이제 막 내려놓은 배우 최강희를 만났다.

드라마가 종영한 지 일주일. 그녀는 짧은 숏커트 헤어스타일로 나타났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냥 잘랐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원래 무언가 자르는 걸 좋아한다. 묵은 이파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쾌감이 있다.”

짧아진 머리카락만큼 한층 여유로워진 그녀에게 드라마가 끝난 소감을 물었다. “어제 보다는 오늘이 조금 나아졌다. 어제까지는 되게 그리웠다. 막연하게 보고 싶었다. 은설이도 지헌이(지성)도. 내 몸은 여기서 멍한 상태로 있는데 내가 은설이의 껍데기였는데, 내가 없는 은설이는 뭐할까? 엔딩 후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한데 대본이 안 나오니 알 수가 없다. 지헌과 키스한 상태로 끝났는데 그대로 멈춰있을 것만 같다.”

드라마가 끝났지만 최강희는 여전히 ‘은설앓이’ 중이다. “더 판타지적인 작품을 했을 때도 끝나면 그들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싶었는데 이번에는 안 그렇다. 노은설은 정말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 목소리 크고, 자기주장 강하고, 싸움 좋아하고, 뒷일 걱정안하는 ‘우주 돌맹이’는 나에게 있어 더욱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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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는 이번 작품을 통해 88만원 세대를 대변했다. 1995년 청소년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데뷔해 17년 동안 배우인생을 살아온 최강희는 어쩐지 88만원 세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라디오(KBS 2FM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를 통해 간접경험은 많이 했었다. 청취자들이 매일매일 뭘 하는지 알려주니. 회사에서 잘렸다고 하고, 오늘도 야근이라고 하고,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고 하는 청취자들을 봤으니까. ‘보스를 지켜라’ 첫 회를 보고 울었다는 분들이 많았다. 사실 엄청 슬퍼서 울었다기보다 그만큼 공감이 됐다는 뜻일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연기를 하면서 직접 88만원 세대를 만난 느낌이었다”

88만원 세대를 만났지만, 최강희는 노은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은설이 될 수 없었다. “나와 노은설은 다르다. 나는 욕심도 없고 생존력이나 전투력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잘 굴러가는 돌처럼 살았다. 돈이 없었던 적은 있지만, 그것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돈이 없으면 집에 있으면 되니까. 크게 소리치고 누군가와 싸워본 적이 없다. 간절함이 없기 때문일까.”

스스로 의문을 던졌다. 듣는 사람 역시 의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여배우가 치열하지 않게 살았다니 말이다. “그게 다른 사람과 차이점인 것 같다”는 최강희는 “지금까지도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뭔가 큰 욕심이 생기거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며 쿨하게 웃어보였다.

노은설의 인생관과는 차이가 있지만, 남자보는 눈은 일맥상통한다. 극중 ‘무느님’이라 불리는 완벽한 남자 차무원(김재중)과 빈틈 많은 남자 차지헌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최강희는 “나 역시 지헌을 외면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만약 드라마처럼 두 남자 사이에 갈등할 일이 생긴다면, 잠수를 탈 것이다. 원래 어려운 고민이 생기면 잠수타는 게 특기라(웃음). 근데 만약 잠수를 못타게 된다면 은설이처럼 지헌을 선택했을 것이다. 연애를 할 때 다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못 느끼겠다. 잘난 사람은 너무 어렵지 않나. 사실 뭐 나도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 좀 하면서 상대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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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는 이번 작품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을 해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어느 누구보다 개성이 강하다. 작품을 선택하는 고집일까. 그렇지만 최강희는 작품선택 기준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나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나 대본 중 내가 끝까지 읽은 작품은 모두 내가 한 작품이다. 대본도 최소한 1, 2부를 끝까지 보고 결정한다. 내가 끝까지 봤다는 것은 최소한 단 한 명이라도 끝까지 봐줄 사람이 있다는 자신감일 테니까.”

아직 노은설을 잊지 못하는 그녀에게 차기작에 대해 조심히 물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오늘부터 그동안 들어온 시나리오를 읽어볼 생각이다. 단, 로맨틱 코미디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내가 ‘로맨틱 코미디 여왕’이었다(?)는 사실을 기사로 처음 알았다. 그 타이틀에 욕심도 없고,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주고 싶다.”

역시 쿨한 그녀다. 마지막으로 데뷔 이래 가장 많이 들었을 ‘최강 동안’의 비결을 묻자, 잠시 망설이더니 노은설식 대답을 내놨다. “꼴리는 대로 살아서 그런가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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