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휴대폰 너머 들린 권혁(19) 이병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분통함과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지난달 4일 해병대 2사단 강화도 해안초소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직후만 해도 권 이병은 영웅이었다.
부대 전입 15일차에 불과했던 권 이병은 대원 4명을 총으로 쏴 죽인 김모(19) 상병과 격투를 벌여 추가 인명 피해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권 이병도 허벅지 등에 총을 4발이나 맞아 신체 주요 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고, 벌겋게 달아오른 총구를 잡고 싸우느라 손에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 40여 일이 지난 지금 권 이병 부모는 아들의 이송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권 이병이 치료를 받고 있는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측이 "급성환자 치료기관으로서 권 이병 치료를 다했다"며 권 이병을 19일 포항의 군병원으로 이송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보기에는 치료할 것이 여전히 많은데 수도병원 측에서는 더 이상 치료를 안 해도 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권 이병 가족은 "병원 측에서 심지어 '부대에 복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까지 해 속을 뒤집어 놓았다"고 토로했다.
권 이병 어머니는 "의사들은 총상을 입은 허벅지에 살이 차 오른다고 하지만 허벅지가 움푹 패여 나중에 반바지도 못 입을 것 같다. 또 밤마다 누가 지나가면 깜짝깜짝 놀라 소스라친다. 불안증상 치료가 필요한데 퇴원하라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권 이병 부모 입장에선 집 근처 민간병원에서 아이를 치료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경제적 부담이 커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래서 수도권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는데 이마저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답답했던 권 이병 아버지는 '해병대를 사랑하는 모임'에 도움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고 이 글은 인터넷으로 퍼져나갔다.
권 이병 아버지는 글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들이 사고 직후 한 첫 마디는 '내가 동료를 구했어' 한 마디였다. 그런데 군에서 작업하다 손가락 상처 난 정도의 사병들과 같은 처분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권 이병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건 후 시간이 흐르자 달라지는 군 당국의 태도는 이들의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권 이병 부모는 "사건 초기에는 국방장관도 오고 해병대사령관도 와 아들의 영웅적 행위를 극찬했다. 국방장관은 큰 훈장을 주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해당 부대는 안 된다고 한다. 국가 유공자도 안 된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수도병원 관계자는 "권 이병이 잘 걷고, 뛰어도 될 정도로 병세가 호전됐다. 후방병원 이송은 급성환자 병실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해병대 관계자도 "훈장과 관련해 국방부에서 지시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배성재 기자 / 노컷뉴스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