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가라오케 DJ…작가에겐 버릴 경험 없더라”(인터뷰②)

[노컷인터뷰] MBC ‘놀러와’의 김명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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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4인방’을 섭외한 장본인인 ‘놀러와’의 김명정 작가. 그는 지난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적시는 수상소감으로 한차례 조명 받은 바 있다.

김작가는 2010년 MBC방송연예대상에서 작가상을 수상하며 “나는 4년제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또 작가 생활을 하며 10여 년간 어렵게 생활을 한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라며 “어려운 시절 함께 보낸 뒤 지금 프로그램에 출연해준 뮤지션들에게도 감사드린다”라고 말하는 등 짧지만 진솔한 수상소감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실제로 만나 본 김명정 작가의 인생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틱했다. 때로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가 싶더니 어느 한 순간 극적반전으로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는 “나는 일반적인 작가들과는 입문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10년~20년간 방송국에서 열심히 일했던 다른 작가들에게 누를 끼칠까 조심스럽다”면서도 “작가에게는 버릴 경험이 하나도 없다”라고 어려웠던 지난 날을 반추했다

◈기자에서 방송작가...시나리오 작가에서 다시 방송작가로 유턴


▶어떻게 작가에 입문하게 됐나.
-서울예전 극작과를 졸업한 뒤 1994년 서울문화사의 일요신문 객원기자로 입사했다. 이후 95년 서울문화사의 주간 스타채널 기자로 일하면서 케이블 개국 프로그램의 방송원고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맡았는데 당시 방송 일에 매력을 느꼈다. 기자 일에 흥미가 없기도 했고...96년 레이디경향 기자를 거쳐 97년도부터 MBC에서 본격적으로 작가로 일하게 됐다.

기자에서 작가가 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텐데?
-사실 기자할 때는 전문대 나왔다고 무시도 많이 당했다. 게다가 주간지, 월간지의 특성상 결혼, 열애, 이혼, 파경 관련 기사가 주를 이뤘는데 내가 서울예전 출신이라 동기들 중 스타가 된 친구들이 많았다. 결국 친구를 팔아먹게 되니 직업에 회의가 들더라. 그때만 해도 기자란 직업은 휴머니즘이 결여된 것 같아 보였다. 때마침 MBC가 ‘남자셋 여자셋’ 대본을 공모했다. 정식으로 공모하지는 않았지만 내 취재원이었던 문선희 작가에게 대본을 보여줬더니 괜찮다고 하더라. 그 때부터 아이디어 작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작가들과 다른 이력이 눈에 띈다.
-내가 변덕이 무척 심하다. (웃음) 사실 작가란 직업은 어떤 PD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변하는 편이다. 초년병 때는 일부 이중적이거나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한 사람들을 참지 못했다. 게다가 매일 공장에서 찍어내듯 원고를 쓰다보니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못 쓰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실감했다. 결국 영화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나갔는데 영화가 말처럼 쉽나. 1~2년 기다리다 엎어지기도 하고...그러다 보니 1억 2천만원짜리 집이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으로 바뀌더라.

영화 작가에서 다시 방송으로 컴백하게 된 계기가 있나?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 쯤이었다. 아들이 ‘엄마, 사람들이 아는 프로그램 쓰면 안되’냐고 사정하더라. 그때 자극받아서 MBC ‘쇼!음악중심’으로 컴백했다. 하지만 가요 프로그램의 특성상 작가가 섭외를 하는 게 아니라 섭외를 위한 청탁을 받는 생리가 잘 맞지 않았다. 7개월 정도 ‘음중’을 맡았다가 2008년부터 ‘놀러와’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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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가난...가라오케 DJ경력까지 버릴 것 없던 작가생활
김작가는 종갓집 며느리였다. 과거형으로 기록하는 건 그가 2003년 이혼을 겪었기 때문이다. 1999년, MBC ‘이브의 성’ 작가로 일하며 인기 MC와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홧김에 작가 일을 그만두고 당시 남자친구와 결혼해 아들도 낳았다.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온 뒤 작가와 종갓집 며느리로 바쁜 삶을 꾸려왔지만 남편이 빚보증을 잘못서서 2억 5천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작가에게 필요 없는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건 무슨 뜻인가?
-대학시절이던 92년부터 작가가 되기 전인 98년까지 가라오케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가라오케에서는 프라임타임과 ‘진상타임’이 있었는데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항상 만취상태의 ‘진상’들만 모여 있는 시간을 맡게 됐다. 20대부터 60대까지 술취한 사람들이 기본 안주에 맥주 3병 시켜놓고 부르는 노래들을 듣다보니 대한민국 웬만한 국민가요는 다 알게 됐다. 내가 ‘세시봉특집’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내가 이혼을 해 보니 이혼한 스타에 대해 누구보다 더 배려할 수 있다. 또 나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이에게는 섬세하게 접근할 수 있더라.

이런 일화도 있다. 결혼 전 '이브의 성'이란 프로그램을 하며 당시 프로그램 출연진과 심하게 말다툼을 한 뒤 나는 홧김에 방송일을 그만뒀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그 출연진은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방송에 복귀했지만 그는 계속 마녀사냥을 당해야만 했다. 얼마 전 그이 집을 찾아가 내가 당신을 계속 미워했다고 고백하며 둘이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 지금 그 출연진은 내가 집필하는 또다른 프로그램의 MC다. 그이로 인해 나는 어떤 사람이든 오래 보겠다는 마음, 프로그램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김작가 본인의 삶도 그렇게 파란만장했나?
-남편이 빚보증을 잘못 서 2억 5천만원의 빚이 생겼다. 이혼 뒤 살던 집을 처분하고 3살배기 아들과 극도의 가난에 들어섰다. 3000만원짜리 주공파아트 전세에서 살며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시트콤, 예능, 라디오 등 프로그램을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시트콤은 작가가 마음이 밝아야 재미있는 아이템을 낼 수 있는데 내 마음이 그렇지 못했고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는 세상을 건강하게 하고 싶은 욕구가 도통 생기지 않아 쓰지 못했다.

설상가상 라디오는 매일 20통 이상 오는 빚독촉 때문에 일이 진행이 안되더라. 쌀도 없고 전기도 끊어졌다. 옆집에서 복도에 내놓은 곰탕을 몰래 가져다가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불행이란파도를 맞고 보니 그 이면에는 또다른 신선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멘토 송지나 작가, ‘놀러와’ 신정수PD에게 감사...토크쇼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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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원동력은 무엇인가.
-작가의 신념이 아닐까. 나는 작가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템을 실현시키는 절대적인 조력자라고 생각한다. 오랜 작가생활을 하며 흔들렸던 때도 많았지만 송지나 선배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송선배는 ‘남들하는건 하지마라, 방송이라는 건 그만큼 무섭다. 진솔한 말을 고민해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피곤하기도 했다. 쉽게 할 수 있는데도 돌아간 게 많으니까.

또 신정수 PD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방송국에서는 내마음 같은 PD를 만나는 게 가장 천운이라고 표현하는데 신PD와 함께 일하는 건 내 복이다. 신PD는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녹화 뒤 게스트가 편집해달라는 요청을 들어주는 게 쉽지 않은데 신PD는 취재원과 신뢰관계를 깨지 않고 다음을 내다보는 몇 안되는 PD다.

▶‘세시봉’으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다음 비장의 무기가 있는지?
-글쎄, 기본적으로 홍보를 위한 이들보다는 오랜 시간 재야에 묻혀있던 이들을 발굴하고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김기덕, 이종환, 환인용을 모아 라디오 DJ특집에 도전하거나 변웅전 차인태 손석희 등에게 아나운서 정신을 묻고 싶다.

▶작가로서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토크쇼를 계속하고 싶다. 세트가 아닌 산에서 캠핑을 하며 이야기를 하는 일대일 캠핑토크쇼에 도전하고 싶다. 또 시트콤 코미디에 대한 미련도 남았다. 내가 MBC를 좋아했던 건 ‘테마게임’이나 ‘오늘은 좋은날’같은 드라마타이즈 같은 코미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내게 있는 블랙코미디의 재능을 살려 시트콤이나 정통 코미디를 하고 싶다.

▶기자 출신으로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작가 자리에 올랐다. 흔치 않은 경력인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요즘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후배들에게 질문을 받다보면 종종 실망할 때도 있다. ‘유재석 강호동 성격 어때요’, ‘누가 제일 예뻐요’라는 질문.

얼마 전 ‘놀러와’에서 넘버쓰리 특집을 하며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나중에 같이 일하고 싶은 MC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더니 답안지에 “김현철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 말을 더듬는다. 장애인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라. 타인의 단점을 장애로 취급하며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게 요즘 아이들의 트렌드인가라는 생각에 설문을 접었다. 만나는 후배들에게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에서 작가 일을 바라보라’가 충고하는 편이다.

김명정 작가 프로필


- 94년,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졸업, 서울문화사 ‘주간 일요신문’ 취재부 객원 입사
- 95년, 서울문화사 ‘주간 스타채널’ 취재부 입사
- 96년, 경향신문사 ‘월간 레이디 경향’ 취재부 입사

95년 케이블 DCN 개국프로그램 [22비디오피아]으로 시작.MBC [스타 스페셜] [이브의 성] [전파견문록] [느낌표][쇼 음악중심] SBS 시트콤 주말 [허니허니], KBS 일일시트콤 [사랑도 리플이 되나요]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 KBS 일요아침드라마 [물꽃마을 사람들] [아가씨와 아줌마사이] 집필, 영화 [엑스트라] 시나리오 참여,[복면달호] 시나리오 각색, 어린이 다큐영화 [리틀비버] 각색 참여, 현재 토크쇼 [유재석 김원희 놀러와] 와 토크쇼 [미인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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