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국내에 체류 중인 난민들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난민 판정 절차 때문에 수년간 이방인으로 떠돌며 기본적인 의료나 교육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무수마리(여·30) 씨 부부는 7년째 한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콩고 출신 난민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교육을 받던 이들이 난민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수마리 씨의 남편 옌기졸라(37) 씨가 중국 유학시절 아르바이트로 중국 정부의 군 홍보 동영상에 무기와 함께 군복을 입고 출연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콩고에서는 군복을 입는 행위 등을 반정부 세력으로 간주, 엄중 처벌했다.
콩고에서 체포됐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부부는 다시 중국을 거쳐 지난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한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망명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난민 지위를 얻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지난 2005년 이들은 한국 정부에 난민 자격을 신청했지만, 증거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외국인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정식으로 취업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무수마리 씨는 "일하다 적발되면 꼼짝없이 보호소로 끌려가 갇혀 있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수입이 없다보니 아기에게 우유를 사 먹일 돈조차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국적 없이 살고 있는 무수마리 씨 부부의 4살배기 아들과 3개월 된 아기다.
국적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로부터 의료와 교육 부문 등의 혜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이들 부부의 3개월 된 아기가 지난 3일 폐렴으로 5일 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에게 100만 원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가 청구되기도 했다.
무수마리 씨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생활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다시는 고향 땅에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난민들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너무 냉담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 까다로운 절차…신청자의 고작 5%만 난민 인정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2009년 6월 현재 국내에서 난민 자격을 신청한 외국인은 2천400명에 달하지만, 실제 난민 지위를 획득한 사람은 116명에 불과하다.
한국이 유엔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한 지 올해로 18년째를 맞고 있지만 난민 신청자 10명 중 9명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 100만 명당 2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인구 1,000명당 난민 2명을 보호하는 OECD 30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처럼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난민 수가 터무니없이 적은 이유로는 난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함께 까다로운 신청 절차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 1999년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국내로 피난을 온 버마 출신 잠(37) 씨는 벌써 5년째 난민 허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잠 씨가 과거에 만료된 학생비자를 연장하지 않았다는 점과 여권 사기를 당한 점 등이 난민 자격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됐다.
잠 씨는 "그나마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은 사진이나 영상자료라도 남는다"며 "경제적 궁핍이나 종교적 이유로 난민이 된 사람들은 증거조차 뚜렷하지 않아 난민 자격을 얻기가 더더욱 힘들다"고 덧붙였다.
2년여 만에 난민으로 인정받은 방글라데시 출신 민주운동가 로넬 씨는 "난민 심사관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 난민 허용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리는데, 그 사이에 난민 신청자는 숨어서만 지내야 한다"며 "정부가 난민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인권 협약 내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국적 없는' 난민신청자 자녀…번번한 의료·교육 혜택도 없어
이러다보니 국내에 체류 중인 난민 신청자의 자녀들 대다수가 국적을 갖지 못한 채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난민 통계에 따르면 2008년 말 기준으로 17세 미만 난민 신청자는 81명인데, 이 중 35% 가량은 4세 미만 영유아 또는 신생아들로 기본적인 의료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말 난민 신청자 3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난민인권 실태조사' 결과, 본국 대사관에서 출생 등록을 한 난민은 19.4%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거나 무국적으로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81.4%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영유아에 대한 필수 예방접종 등이 제 때 이뤄지지 않고 있었으며, 25% 가량은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무국장은 "영유아를 포함한 미성년 난민들의 인권도 심각하게 위협 받고 있다"면서 "이들이 의료혜택 등을 비롯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