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울리는 '권리금'…임대업자 함부로 손 못댄다

건물주 바뀌어도 5년은 영업가능, 권리금 표준과 손해배상 청구 규정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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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45)는 19년째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건물주가 갑자기 임대료를 3백만원에서 8백만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하더니 퇴거를 요구했다.

몇달뒤 임대인은 새로운 상가 임차인에게 종전 수준의 임대료와 함께 2억원의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임대했다. 권리금을 모두 임대인이 먹어버린 것이다.

B씨(50)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B씨는 5년 임대차 계약을 맺고 국밥집을 창업해 고전을 거듭하던 중 4년차에 매출이 크게 증가해 흑자 전환을 시켰다. 장사가 잘되자 임대인은 계약 갱신을 거부해버렸다. 대신 임대인은 스스로 영업을 개시했고 B씨는 권리금도 못받은 채 쫓겨나고 말았다.

상가 임대차의 경우, 임대인의 재산적 가치와는 별개로 임차인의 영업활동의 결과로 영업적 가치가 형성되고, 임차인들은 그 영업적 가치를 '권리금' 거래를 통해 회수한다.

그런데 많은 임차인들이 건물주인 임대인들의 횡포로 인해 권리금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이른바 '폭탄돌리기'로 많은 임차인들을 울려온 상가권리금이 앞으로 법제화된다.

또한 임대 규모와는 상관없이 건물주가 바뀌어도 5년간 안정적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된다.

자료사진 (사진 = 이미지비트 제공)
◈ 권리금 첫 법제화, 임대인이 권리금 받을 수 있게 협력해야

법무부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은 민관 합동 TF와 연구용역을 마치고 '권리금 법제화'를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권리금은 장사가 잘되는 상가를 거래할 때 새로운 임차인이 먼저 장사하던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프리미엄 성격의 돈이다. 지난해 10월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상가의 55%에 권리금이 있었다.

엄연히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법상에는 없어 임대료가 올라 장사를 그만두거나 건물 용도 변경이나 재개발, 재건축으로 건물이 없어지면 회수할 방법이 없다.

결국에는 한 건물에서 마지막으로 권리금을 내는 상인이 생기게 돼 '폭탄 돌리기'로 표현되기도 한다. 지난 2009년 용산 참사 등 재개발로 인한 폐해가 생길때에도 이 권리금이 문제가 됐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서는 처음으로 권리금을 정의해 법적 테두리에 포함시킨다.

개정안은 권리금을 영업시설, 비품, 거래처, 신용, 영업 노하우, 상가건물 위치에 따른 영업상 이점 등 유형·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이용 대가로 임대인, 임차인에게 보증금과 차임(월세) 이외에 지급하는 금전 등으로 규정했다.

상인이 가게를 넘겨받는 상인에게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임대인이 협력해야 한다는 의무도 부과한다. 또한, 권리금 산정 근거와 관련 권리·의무관계를 명확히 한 표준계약서도 내년부터 도입된다.

◈ 권리금 손해배상 청구권과 중재기구 신설

권리금을 못받았을 경우에 손해배상 청구권과 이를 중재할 수 있는 분쟁조정 기구도 설치된다.

개정안에는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면 임차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배상액은 임대차 계약 종료 당시의 권리금을 넘기 않도록 하되, 권리금 산정 기준은 국토부 고시로 규정하도록 했다. 다만 법률상 임대인의 협력 의무 적용이 배제되는 경우나 정당한 사유가 있어서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과 계약체결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권리금에 대한 분쟁을 소송으로만 다툴 경우, 분쟁이 장기화 돼 비용이 발생하면서 영세 임차인에게 손해가 커질 우려가 있다. 이에 저비용으로 상가 임대차 분댕을 조정, 합의할 수 있도록 17개 시도에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밖에 표준계약서를 보급하는 등 투명성을 강화해 분쟁 가능성을 줄여갈 방침이다.

◈ 건물주 바뀌어도 최소 5년은 영업 권리 보장…너무 짧다 지적도

장사가 잘 되면 새로 들어온 건물주에게 계약 갱신을 거절당해 겨우 자리잡은 가게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대로 넘겨줘야 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같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 5년은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새 건물주로 바뀌어도 기존 계약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확대된다.

개정안은 상가임대차 계약 때 임차인의 대항력(건물주가 바뀌어도 기존 계약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을 인정하는 기준을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 4억원(서울) 이상 계약에서 모든 임대차 계약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법이 개정되면 환산보증금 규모와 관계없이 임대인은 건물주가 바뀌어도 전 건물주와 계약한 내용을 그대로 주장할 수 있다. 상인들에게 5년간은 안정적으로 한 곳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번 대책에는 권리금을 법제화하는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에서는(환산보증금 4억 이상) 건물주가 임대료를 얼마든지 높게 인상할 수 있고, 재개발 재건축에서는 기존 상인이 권리금을 보장받을 길이 없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권리금의 법제화로 권리금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영업권 보장 시기가 5년은 너무 짧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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