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정확히 10년째를 맞는다.
성매매방지법은 2000년과 2002년 전북 군산 대명동과 개복동 화재 참사를 계기로 성매매산업 해체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면서 2004년 9월 23일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군산 개복동 유흥주점에서 일어난 화재로 꽃다운 나이의 여성 14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는 그동안 모두가 알면서 외면해 왔던 성매매산업의 실체와 성매매여성의 인권에 대해 전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는 '성매매방지법 10년'의 성과와 한계 등을 되돌아 보는 의미로 16일 '성매매방지법 시행 10주년 기념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지원센터장이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정재원 국민대 교수와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조선희 전북여성단체연합 대표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성매매 규모↓·범죄 인식 증가↑
성매매방지법의 가장 큰 성과는 시행 초기 강력한 단속을 통한 실질적인 성매매 감소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전인 2002년 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성매매경제규모전국조사'에 따르면 전국 성매매 알선업체 수는 7개 업종에 5만여개 업소에 달한다.
종사여성수는 최소 33만명으로 20∼30대 여성인구의 4.1%를 차지했다. 성매매 산업 연간 매출 규모는 유흥업소, 전업형성매매 집결지, 비업소형까지 모두 합쳐 24조원 규모로 추정됐다.
이는 2002년 국내 총생산의 4.1%에 해당하는 수치로 당시 농림어업의 비중은 4.4%였던 것으로 비춰보면 실로 대단한 규모다.
성매매 방지법 시행 3년 뒤인 200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전국성매매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성매매업소는 4만6천여곳으로 줄었으며, 성매매여성수 26만여명, 연간 매출 규모도 약 14조원으로 감소했다.
2010년 서울대여성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산업 규모는 6조8천600억원으로 줄어들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0.65%로 감소했다.
규모의 감소는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이 높아진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인식 변화는 전체 성매매 규모에 전반적인 감소로 이어졌으며, 전업형성매매 집결지 폐쇄와 여성종사자의 감소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지원센터장은 "통계 수치에 신·변종업소와 해외성매매 등 비공식적인 부분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전후를 비교했을 때 모든 부분에서 실질적인 감소가 이루어졌다"면서 "또 법 시행 전 성매매 알선업자들이 여성들을 억압하는 방법으로 사기나 횡령 등으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피해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진정과 고발을 할 수 있어 알선업주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말했다.
◇ 신·변종업소·해외 성매매 증가
성매매방지법 시행 후 성매매 규모는 줄었지만 강해진 단속에 대응해 신·변종 성매매업소도 함께 늘어났다.
또 국내 단속을 피해 성매매가 합법이거나 단속이 허술한 해외를 찾는 '해외 원정 성매매'도 늘었다.
경찰청이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동안 기업형 성매매 업소를 단속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441건)보다 120% 늘어난 총 975건을 적발했다.
단속 업소 유형별로 살펴보면 신변종 업소가 67%로 가장 많았으며 안마 시술소 9.3%, 숙박시설과 결합된 '풀살롱' 8.3% 등이었다.
업소 면적이 100평 이상인 대형 성매매업소는 314건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했다.
경찰 단속 현황에서 보듯이 성매매방지법 시행 후 성매매 방법은 나름대로 '진화'하고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알선업자들은 회원제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1대 1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업소의 위치도 원룸촌과 학원가 등 주택가로 숨어들어 단속망을 피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18일 전북 전주에서 주택가 원룸을 빌려 성매매 영업을 한 혐의로 업주 박모(35)씨를 불구속 입건됐다.
박씨는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의 한 원룸을 임대한 뒤 인터넷 유흥업소 홍보사이트로 모집한 성매수자를 상대로 1시간에 15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알선했다.
신·변종업소와 함께 해외 성매매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1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28건이었던 해외성매매 검거자는 2010년 78명, 2011년 341명, 2012년 274명, 2013년 496명으로 5년 새 4배가량 늘었다.
특히 성매매알선자 적발 건수는 7배가 늘었고, 성매수자인 남성의 적발보다 성매도자인 여성을 적발한 건수가 4배 이상 많았다.
◇성매매방지법 무력화 주범은 '성매매 카르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10년을 맞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성매매가 성행하는 이유에 대해 성접대 문화를 당연시하는 기업과 공무원, 사법기관, 언론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권력자들의 '성매매 카르텔'을 꼽았다.
토론자로 나선 정재원 국민대 교수는 "신·변종업소와 해외성매매 증가도 문제지만 이보다는 기존의 성매매 온상인 룸살롱과 단란주점을 통한 성매매가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더 큰 문제다"면서 "성매매 카르텔을 형성한 권력자들은 신·변종업소와 해외성매매 등 성매매방지법으로 인한 '풍선효과'를 강조하며 성매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성매매 카르텔 구성원들은 서로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성매매 업소에서 서로 접대하고 접대받거나 여성을 성적 도구화 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현상은 성매매 규모의 감소에도 여전히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룸살롱과 단란주점의 성행에 잘 나타난다.
2010년 성매매 매출 규모는 6조8천600억원 중 룸살롱, 단란주점 등 일반유흥주점을 통해 이뤄지는 성매매 액수는 3조5천729억원에 달한다.
이에 비해 성매매 집결지의 매출은 5천765억원으로 8.7%에 불과했고, 최근 급증하는 신·변종 성매매도 2천547억원으로 3.3%,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는 1천718억원(2.6%)에 머물렀다.
정 교수는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공공기관, 언론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성접대 문화를 공식적으로 폐지 선언 등 '성매매 카르텔'을 해체하는 사회 운동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여성들이 성매매 업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노동시장에 여성 차별이나 불평등을 철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어 "한국 성매매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룸살롱, 단란주점 등 일반유흥주점 성매매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