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도그마'다. 국어사전에서 도그마는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도그마는 공직선거법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선고에서 작동했고 재판 시작 1년여만에 선고가 내려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도 그대로 원용됐다.
판결을 지켜 본 한 법조인은 "재판부가 국정원법은 유죄,공직선거법은 무죄라고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법리구성을 짜집기로 구겨넣은 선고"라며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판결이었다"라고 평가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는 공직선거법 위반(이하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과 트위터 활동이 국정원법 위반에는 해당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 전원장의 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두 혐의는 한몸에서 태어난 '샴쌍둥이'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국정원이 여론을 조성하고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보수집 범위를 넘어선 국정원법상 직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국정원법 위반)과 이같은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하면서 선거 전 여당 옹호활동을 했다면 선거개입에 해당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라고 하면서 선거개입 행위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직 선거법은 당선을 이용해 특정될 수 있는 후보의 낙선이나 당선, 당선 또는 낙선 되는 후보가 특정돼야 적용할 수 있다"며 "국정원 댓글 활동은 대선 후보가 드러나지도 않은 2012년 1월부터(대선 11개월전)의 행위로 선거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엄격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 댓글활동이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검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선거운동을 지시했거나 특정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키기 위해 '능동적.계획적'으로 할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용판 항소심 무죄 판결문에서 베껴 온 '선거법 무죄' 논리
선거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그것을 반드시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항소심 무죄 선고 내용 판박이다.
서울고법 제2형사부(부장 김용빈)는 지난 6월 5일 김용판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당시 서울경찰청의 수사 발표는)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어떠한 행위가 선거운동에 해당하려면 그 행위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특정 후보자에 대한 당선 또는 낙선의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김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청구 사건을 꺼내 들었다.
헌법재판소가 노 전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여부에 대한 결정을 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해당하지만 '선거운동'에는 해당하지 않았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참으로 여야를 넘나드는 법원의 묘수(?)다.
이처럼 원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는 항소심 재판부 논리를 그대로 인용했다.
원세훈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과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엄격히 구분되므로 비록 피고인들의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라고 볼 여지가 있더라도 그보다 좁은 개념인 '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선거운동'을 좁은 개념이라고 설정해놓고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다.
그러면서 "통상적인 선거운동의 경우라면, 선거일에 가까울수록 점차 선거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검사의 공소사실을 보면 트윗 및 리트윗 건수가 2012년 10월 이후 뚜렷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구차한 설명을 덧붙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트윗글이나 댓글 가운데 단 1건만이라도 선거운동에 해당하면 선거법 위반인데 재판부가 트윗.리트윗 건수가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줄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는 궤변처럼 황당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트윗글과 댓글의 성격에 대해 재판부가 구체적으로 따져 본 흔적은 찾아보기도 어렵다.
결국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선거법 위반은 여하한 경우에도 무죄라는 논리가 김용판 피고인과 원세훈 피고인에 대한 두 재판을 통해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법원은 정치적 사건에서 늘 '정치적 판결'을 내놓는다는 항간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