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먹고 살리려면 이혼하는 수밖에…

[화제의 공익법 판결] 장애인 부부를 이혼으로 내모는 부양의무자제도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앞두고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수급자의 부양의무자 문제를 연이어 다룬다. [편집자 주]

서울에 사는 김모 씨는 군대복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의가사제대한 2급 지체장애인이다. 김씨는 장애인인 부인과 어린 세 명의 자녀들과 함께 부족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5인 가정의 가장이다. 김씨는 장애인단체 활동가로 근무하는 등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다 경제불황으로 실직 상황에 놓이면서 2013년 동주민센터에 가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신청하였다.

수급권을 신청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소득인정액 산정을 위한 신청서도 꼼꼼하게 작성해야 하고 각종 증빙자료를 챙겨야 했다. 또한, 부양의무자 곧 본인과 부인의 직계가족인 고향 부모님과 처갓집 어르신들께 금융정보동의서를 받아 제출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받으면 대출로 연명하고 있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사회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게 되느니만큼 더욱더 열심히 살아서 받은 도움을 갚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구청으로부터 수급권 부적합 판정이 나왔다는 소식을 받았다. 이유를 물어보아도 잘 대답해 주지 않았고, 찾아간 구청에서는 부양의무자인 부모님이 부양능력이 있어 부적합자로 되었다고 했다. 알고보니 고향집이 있는 곳이 몇 년전 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공시지가가 급상승하여 재산산정기준을 넘겼다는 것이었다. 재개발지구로 묶여 매매도 안되는데 말이다. 또한, 어머니가 심장수술비와 생활비를 융통하기 위해 자택담보로 대출받은 자금에 대해서는 병원비만 공제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사유로 공제대상에서 제외하여 빚으로 연명하고 있는 팔순을 바라보는 부모님이 부양능력자로 판정되었다는 것이었다.

◈ 아이들이라도 먹고 살리려면 이혼하는 수밖에…

김씨는 너무나 황당했지만 임대주택 이웃주민의 소개로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부적합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다. 반년에 걸친 이의신청 끝에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답변은 “부적합 처분은 맞는데 자치구별로 있는 지방생활보장위원회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부적합 처분 취소에 대한 희망으로 이의신청 기간 동안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했던 김씨는 생존의 위협마저 느껴야 했다. 주위 영구임대주택의 이웃들은 이혼이라도 해서 부인과 세 자녀라도 살아가도록 해야 하지 않냐고 충고했다. 이혼을 하게되면 김씨의 부인은 시부모님과 부양의무 관계가 끊어지므로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번민과 고민 끝에 결국 김씨는 협의이혼을 신청했고 이혼숙려기간에 들어갔다. 이혼이 되면 집근처 고시원방을 얻어 살아갈 생각이다. 부부가 모두 장애인이라 취업이 힘든 상황에서 세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길은 부인이라도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 멀쩡한 가정을 이혼으로 내모는 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헌법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따라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 5항)를 “권리”로서 보장하도록 한 최초의 제도이다. 빈곤층에게는 수급권은 신청자 및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의 소득, 재산, 근로능력을 조사하여 급여 지급 여부와 그 내용을 정하고 있다. 신청자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고 부양의무자도 부양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정받은 경우 최저생계비에서 소득인정액을 뺀 나머지를 급여로 지급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마지막 사회적 안전망,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최저생계비 이하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양의무자 문제는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에 있어 최대의 걸림돌이다. 1촌 이내의 직계 혈족과 그 배우자(부모입장에서는 자식, 며느리, 사위까지)의 재산, 소득, 근로능력 등을 금융정보동의서를 받아 사회복지통합전산망(행복e음)으로 샅샅이 훑어서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실제 부양 여부와 관계없이 부적합 판정 사유가 된다. 위의 김모씨 사례의 경우 부인과 이혼을 하게 되면 김씨의 부인은 김씨의 시부모님과 더 이상 부양의무 관계가 아니므로 수급권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에게 부양의무제는 저소득층의 가족해체를 강요하고 있다. 어려운 분들이 모여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수급권을 받거나 유지하기 위해 이혼을 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 기초법 운영 15년, 이제 부양의무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경제위기 이후 빈곤층은 늘어나는데 국민기초생활보장의 보호를 받는 수급권자의 수는 2009년 157만명(인구대비 3.22%)에서 2013년 135만명(2.6%)까지 떨어지고 있다. 올해 2월 송파 세모녀 사건에서 보듯이 대규모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생계곤란 자살자는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득기준과 재산기준을 충족하는 극빈층 중 약 117만명이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부양의무제는 원래 재정적 부담과 아울러 부모 자식간 부양하는 것이 맞다는 사회적 통념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부양이 힘든 상황에서 부양의무를 각 가정에 강제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부양이라는 사회적 미덕보다는 수급권을 위한 가족 해체, 이웃간의 부양관계 신고 등 공동체의 파괴, 사회성의 파괴를 가져오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드는 악덕을 부추기고 있다.

존치론자들의 주장대로 국가재정이 부족하니 당장의 폐지가 어렵다면, 우선 며느리․사위까지인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고, 단계적으로 노인, 임산부,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 등 가구별 특성을 고려하여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재산산정기준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진짜 맞춤형 부양의무기준을 운영하는 등 부양의무자제 폐지로 가는 단계별 로드맵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에 따라 국민의 마땅한 권리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그 최대 걸림돌인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라져야 한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복지소외계층의 권리행사를 돕고, 다양하고 실질적인 법률구제의 토대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문의 164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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