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앞두고 가족을 북한에 남겨두고 월남한 탈북청년들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깊어지고 있다.
8일 경기도 안성 탈북청소년들의 중등 및 직업교육기관인 한겨레고등학교엔 추석연휴에 갈 곳이 없어 기숙사에 남아 긴 연휴를 보내는 학생 5∼6명만이 남아있다.
학생들의 웃음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가득한 학교에는 이날 만큼은 마음 붙일 데 없는 학생들의 쓸쓸함만이 맴돌았다.
2년 전 여름, 가족 몰래 탈북한 김미선(21·여·가명)씨는 남한에 아무런 연고도 없어 그야말로 '혈혈단신'이다.
국경선을 넘다가 혹시라도 발각될까 가족사진 한 장도 챙겨오지 못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더 보고 싶은 부모님 얼굴이지만 브로커의 휴대전화를 빌려 목소리라도 간신히 들은 지도 3개월이 넘었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친구네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지내며 외로움을 달랬는데 올해는 학교 기숙사에 남기로 했다.
연휴를 즐기는 친구 집 분위기를 망치는 것만 같고 문득 그 사이에서 자신이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추석 때면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한 친척 어르신과 조카들을 만나 성묘길에 오르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차편이 없어 차례 음식을 머리에 이고 한 시간가량을 걸어가야 했지만 가족과 함께했던 터라 한 번도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몸과 마음이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명절에 친척을 만나 성묘하고 큰집에 오순도순 모여 윷놀이라도 하면 그간에 힘들었던 게 싹 가셨다.
김씨는 "가족과 함께 탈북하거나 먼저 남한에 친척들이 와있는 경우가 많아 명절 때가 되면 학교가 텅 빈다. 연휴 내내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만 든다"며 고개를 떨궜다.
명절에 외로움을 참으며 홀로 눈물을 흘리는 건 같은 학교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인 박종민(23·가명)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3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형, 누나와 뿔뿔이 헤어진 뒤 고아원에서 자랐다.
감자와 옥수수만으로 끼니를 때우던 생활의 연속이었는데 여덟살이 되던 해 추석은 그에게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있다.
명절을 앞두고 고아원을 찾아온 형과 누나가 시장에 데려가 사주었던 떡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겨 이씨는 고아원 친구들과 탈북했고 '행복한 삶'을 기대한 남한에서의 생활에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다.
"연휴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외롭고, 서럽고…. 명절에 가족 품으로 가는 같은 방 친구를 보면 더 그래요".
이씨는 언젠가 돈을 모아 북한에 남아 있는 형과 누나를 데려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올 추석도 쓸쓸하지만 당차게 학교를 지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