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상동면의 김영자(58)씨는 송전탑을 볼 때마다 "가슴이 턱 막힌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다가오는 추석이 싫다"고 말했다.
이웃사촌간의 마을공동체는 박살이 났고, 친척들도 "왜 그렇게 싸우냐"며 던지는 속 모르는 소리를 들어야기 때문이다.
다음은 김씨의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제작 손성경 PD)과의 인터뷰.
■ 방송 : FM 106.9MHz (17:05~17:30)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팀장)
■ 대담 : 밀양 상동면 주민 김영자 씨
김효영>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 한 분 만나보겠습니다. 상동면에 살고 계시는 김영자씨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영자>네. 안녕하세요.
김효영>목소리를 들어보니 할머니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
김영자>네. 올해 쉰여덟입니다.
김효영>지난 6월에 농성장이 다 뜯겨나갔잖아요. 그 이후에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김영자>네. 아직까지도 싸움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언론에는 보도기 되지 않고 있지만 115번은 지금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그 곳에는 주민들이 공사차량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막고 있으며 아직까지 경찰과 대치상태입니다.
김효영>옛날처럼 천막이나 움막을 치고 계신 것은 아니시고요?
김영자>지금은 농성장이 마을마다 사랑방으로 변신을 해서 사랑방에서 먹을거리 같은 것은 해결이 되고요. 그 앞에서 농성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이거든요. 그래서 115번 현장 올라가는 차들, 자재들이나 인부들을 막으면서 아직까지 공사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김효영>김영자 씨는 송전선로와 얼마나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십니까?
김영자>지금 저희 마을 앞에는 121번 송전탑에서 122번 123번이 세워져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들 마을에서는 300m 더 되는 상황입니다.
김효영>집과 300m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에 송전철탑이 들어선다는 말씀이신 거죠?
김영자>네. 농장은 그보다도 훨씬 가깝죠.
김효영>농장이라면 어떤 농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영자>하우스하는 농장이라든지 과수원 같은 것은 송전탑과 거리가 한 150미터에서 200미터. 저희 마을에도 그렇지만 지금 115번 현장은 상동면 같은 경우에는 감농사가 주 소득원인데요. 과수원 한가운데 세워지거든요.
김효영>과수원 한가운데요?
김영자>네. 그래서 그 공사만큼은 막아보겠다고 주민들이 그 현장에서 움막을 짓고 있다가 6월 11일날 행정대집행 때 다 철거가 된 거죠.
김효영>네. 집과 농장 근처에 송전탑이 들어설 때에 어떤 점이 제일 걱정이 되십니까?
김영자>지금 115번은 저희 집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친정마을이 고정리 마을인데 고정리가 2번, 3번으로 115번에서 116번으로 선이 걸리면 마을이 두 동강이 나거든요.
지금 제가 아침에 일어나면 123번, 122번이 코앞에 우뚝 솟아있으니까 그것만 봐도 121번 송전탑은 논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데 주위에는 하우스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 상주를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거든요. 그런 상황이고요.
지금 115번 같은 경우에는 그 농장 한가운데 세워지니까 마을과 상당히 가까운 것도 문제지만 저희는 그 농장에서 생산되는 과일이나 그 곡식들을 가지고 생계를 잇고 있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큰 송전탑이 세워져서 그 많은 전기가 흐르게 되면 그 밑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가슴이 콱 막히는 그런 기분입니다. 요즘은요. 공사를 막을 수 없다는 그 생각 때문에. 너무 힘들죠. 그 모습들이. 그 웅장하게 서 있는 송전탑이 지금 너무나도 위협적으로 다가온다고 해야 합니까. 그런 상황입니다.
김효영>위협적이다. 가슴이 콱 막힌다?
김영자>네. 너무 힘들죠. 지켜보는 이 상황이. 지금 113번, 114번, 115번만 공사 중이고 다른 송전탑은 다 세워져 있거든요. 상동면에는 109번에서부터 내려오는 선이 122번까지 내려와 창녕 변전소를 보고 123번부터 저희마을 앞에 그 도로 올라가는 그런 노선이거든요.
그래서 상동면 전체주민들이 피해주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동면 전체가 초토화된 상황이죠.
김효영>주위에서 '이제 한전과 적당히 보상받고 끝내라'는 말도 하시죠?
김영자>네. 적당히 보상받는다고 하지만 적당한 보상이 얼마겠습니까? 지금 저희들의 재산상 가치가 제로상태이지 않습니까. 그 적당한 보상이라 하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는데요. 적당한 보상이라 하면 저희들 집이라든지 농사를 짓고 사는 논밭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정부에서 다 사주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님이나 국무총리님께서 내려오셨을 때 사실상 저희들과는 대화를 안했거든요.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과 대화를 한 것이 아니고요. 송전탑과는 아무 상관없는 2,30킬로미터 떨어진 그런 마을 동장님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시청에서 '송전탑을 세우는데 협조를 좀 해 달라' 이런 식으로 당부를 하고 가시는 바람에 언론플레이만 무성했었지 저희와 그분들이 내려온 일은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총리가 내려오면서 마을발전기금을 40%씩 개별보상으로 나눠 쓸 수 있도록 해 놓은 것밖에 없죠.
김효영>김영자씨는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하셨죠?
김영자>네.
김효영>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김영자>네. 그 글을 올릴 때는 6.11 행정대집행 때 계고장을 받고 난 뒤거든요. 그 계고장을 받고 115번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새누리당 국회의원 한 분이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밀양 송전탑 전문데모꾼' 이라는 말을 했더군요. 그 기사를 보고 제가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지금이라도 행정대집행 같은 그런 물리적인 충돌 말고 저희들과 대화를 해서 한 번 풀어볼 수 있는 방법은 없겠나 싶어서 청와대에 글을 올리게 됐고요.
글에서 권 국회의원님이 하셨던 우리를 전문데모꾼이라 했던 말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전문데모꾼이 아니라 전문 농사꾼이다. 우리가 농사지은 그 채소들이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갈 것이고 우리가 농사지은 그 과일들이 누군가의 입 속에서 달콤한 맛으로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사는 전문 농사꾼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 말이, 전문데모꾼이라는 그 말이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저희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저희에게 전문데모꾼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봐야 해요.
김효영>시민단체 등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을 외부세력이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김영자>외부세력을 꼭 말씀드리자면 공무원들이 합의를 하고 이것은 공사를 강행을 해야 된다는 식으로 마을을 분열시키는 그 공무원들이나 아니면 지금 불법공사를 하고 있고 부실공사를 하고 있는 그 공사를 막는 주민들을 막고 있는 경찰들이 외부세력이라고 봅니다. 그 분들만 없었으면 대화를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지금 저희들과 손을 잡고 함께 하고 있는 연대자 분들은 진정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분들이잖아요. 지금 우리나라에 원전 밀집도가 전 세계에서 1위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이렇게 원전을 짓는다고 봤을 때요. 우리나라가 지진에서 안전한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 덩어리가 넓어서 한 곳에서 터지면 피신을 갈 수 있는 그런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연대 오시는 분들은 이 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이 나라의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들이 그 분들을 외부세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김효영>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추석 준비는 좀 하고 계십니까?
김영자>사실 지금 저희는 추석도 반갑지가 않아요. 이렇게 수년간을 싸우고 있으니까 친지 분들도 오시면 물론 저희와 같은 뜻을 가진 분들도 계시지만 개중에는 뭐, '정부에서 하는 일 이렇게 싸운다고 되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형제들도 있는데요. 그게 싫은 거죠.
그리고 지금은 마을 공동체가 찬반으로 나눠져서 완전 박살이 난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이웃을 보기도 참 껄끄럽고요. 또 같이 살고 있는 이웃인데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서로 말을 안 하기도 하고요. 아래윗집에 살아도 사촌 지간 말을 안 한지가 오래된 그런 상황이다보니 사실 예전처럼 그런 분위기는 없죠.
김효영>이웃사촌이 갈갈이 찢어졌고 또 형제들마저도 '왜 그렇게 싸우느냐'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시니까 속상하신 거죠?
김영자>네. 많이 속상하죠.
김효영>자제분들은 어머니 이제 좀 그만 좀 하시라고 말리진 않으세요?
김영자>그런 이야기는 안합니다. 저희 아들이 제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있을 때 제가 농사짓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하우스를 관리하면서 엄마와 같이 일하던 주민 분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다 본 거예요. 그래서 제가 퇴원을 하고 집에 가서 일을 같이 하면서 아들이 이야기하더라고요.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직까지 아들은 제 편이고 저에게 용기를 주며 후원해 주는 그런 입장입니다. 그래서 좋아요.
김효영>그래요. 아드님 생각하시면서 추석 잘 보내시고요.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영자>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