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16일 오전 9시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등에 모인 100만 명 정도의 신도와 시민들 사이로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9시 30분께 광화문 광장 왼편을 돌던 교황은 갑자기 차를 멈춰세우고 내려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교황의 발길이 멈춘 곳에는 김영오 씨가 서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34일째 단식 중인 단원고 학생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이다.
교황이 전날인 15일 만난 세월호 유족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15일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 교황은 세월호 유족 10명을 따로 만났다. 그때 유가족들은 교황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그중 하나가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 중인 김영오 씨를 안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오 씨는 고개를 연신 숙이며 교황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통역을 통해 말을 전달받은 교황은 김영오 씨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유족들은 "비바 파파"(교황 만세)와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김영오 씨는 자신의 심정을 담은 편지를 교황에게 전달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다시 당부했다. 편지에는 "당신께선 가난하고 미약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끌어안는 것이 교황이 할 일이라고 하셨다"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으니 도와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도와주시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 씨는 교황을 만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교황을 만난다고 특별법이 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이를 통해 정부에 압박을 주려 한다"면서 "교황께 너무나도 고맙다"고 답했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에 따르면, 교황 방한이 결정된 뒤 150여 단체가 교황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는 것은 선택했다.
첫째 날 공항 환영 행사 때 세월호 유가족 4명에게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위로를 전했다. 둘째 날 대전에서 유가족과 생존학생 등 10명을 만난 자리에서는 그들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하겠다",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셋째 날에는 전날 유가족들의 당부대로 김영오 씨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교황과 유가족의 만남은 넷째 날인 17일에도 이어진다. 17일 공식 방한 일정을 시작하기 전 서울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 승현 군을 잃은 아버지 이호진 씨에게 세례를 할 예정이다. 이 씨는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나무 십자가를 지고 38일간 전국을 걷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