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했던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해 방송가에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SBS '괜찮아, 사랑이야'(이하 '괜사')엔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인 쪽대본이 없다.
집필을 맡은 노희경 작가는 벌써 16부까지 대본을 탈고했다. 주연 배우인 공효진과 조인성 역시 이런 제작 시스템에 만족감을 표했다.
조인성은 반전 엔딩으로 화제가 된 4회 대본을 올해 초에 받았다. 환상 속 자아와 대화하는 다소 까다로운 연기였지만 덕분에 충분히 4회 엔딩을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지난 6일 열린 '괜사'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초에 4회 대본을 받았는데 드라마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 부분이 소통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와 닿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텍스트에서 느꼈던 것처럼 영상도 그렇게 나와서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대본 리딩 횟수는 벌써 10회를 넘었다. 보다 여유로운 제작 환경 속에서 작가 및 PD와의 소통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
조인성은 "김규태 PD와 노희경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보완할 부분을 보완해 종합적으로 촬영에 임하게 된다"면서 "하나 하나 소통하면서 만들어내는 캐릭터라 치밀하게 대사를 하면서 촬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시간들이 있어서 참 좋다. 보통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대본 16부가 다 나왔고 2부에 한번 리딩한다"고 덧붙였다.
공효진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 제작진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는 "제작진이 정확하게 준비하고 최선의 연기를 도와준다. 그런 모든 것들로 인해 부담과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연기에 집중하게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배우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촉박한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에 변화를 바라기도 했다.
그는 "이런 제작진과 시스템으로 드라마를 촬영하다가 앞으로 다른 드라마를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며 "다른 드라마들도 더 빨리 준비해서 배우들이 날개를 펼쳐 연기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시즌제 드라마는 주로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에서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으며 시청률에 따라 존폐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전 시즌이 잘 되면 다음 시즌도 편성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드라마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긴 호흡을 가진 드라마에게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계획된 시즌제는 이런 기존 시즌제의 단점을 보완할 돌파구다.
연출은 맡은 김병수 PD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가 시즌제 드라마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인데 계획된 시즌제는 아니었다"며 "앞선 시즌의 결과에 따라 그 다음 시즌 제작 여부가 결정되는데 '삼총사'는 아예 시즌3까지 제작을 확정 짓고, 캐스팅도 완료했다"고 말했다.
길어진 제작 기간에 비례해 제작비도 늘어나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김 PD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 기간과 제작비가 늘어나 부담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아주 잘 만든 드라마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송재정 작가는 시즌제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를 밝히며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을 지적했다.
송 작가는 "드라마 내용 상 해외 로케이션이 꼭 필요한데 사전 제작을 할 수 없어 시즌제로 나누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작가로 작업을 하며 가장 힘든 것이 미니시리즈 중심의 드라마 환경 포맷"이라며 "미니시리즈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기인데 보통 경력의 작가가 아니면 그런 스토리를 해마다 내기 힘들다. 작가로서 소진되고 콘텐츠를 내버리는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결국 PD나 작가들도 배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역시 보다 좋은 콘텐츠 생산을 위해 한 작품을 하더라도 시간에 여유를 두고 꾸려 나가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것. 특히 소현세자 일대기를 그린 '삼총사'처럼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드라마에는 더욱 이 같은 시즌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시도가 방송가에서 계속 이뤄진다면 드라마의 미래는 밝다. 많은 시청자들은 국내 드라마가 쪽대본, 생방송 드라마의 오명을 벗고, 착한 제작 환경 속에서 질 좋은 콘텐츠들을 생산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