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의료법 등 국회에 제출된 경제 활성화 관련 19개 법안의 주요 내용을 일일이 열거했고,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로 판단을 잘못해 옛날 쇄국정책으로 기회를 잃었다고 역사책에서 배웠는데 지금 우리가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야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실제로 여야는 지난 5월 기초연금법 등을 처리한 뒤, 후반기 국회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못했다. 정무위에 계류중인 이른바 '김영란법'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당장이라도 처리할 것 같았지만, 후반기 국회에서 전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후속 대책으로 내놓은 정부조직법과 유병언법 논의도 실종됐다. 정부여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법안들도 마찬가지 상태다.
이 같이 국회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은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다른 사안들이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합의 내용을 둘러싸고 세월호 유가족과 야권 내부의 반발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사실상 재협상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13일 본회의 처리가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법안들 역시 조속한 처리가 난망한 상황이다. 경제 침체가 지속되고, 내수부진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터에 여야 정치권에서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정치력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거침없이 정치권을 질타한 박 대통령은 국회의 이런 상황과 전혀 무관한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유족이 여한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상처가 치유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세월호를 계기로 나라를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현안을 놓고 극한 대립을 벌이는 상황에서 여권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고, 청와대를 향한 진상조사는 철저히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세월호 침몰 당일 대통령의 일정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키기까지 했다.
언제까지 세월호로 세월을 보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이제는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세월호를 분명하게 매듭지을 수 있도록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고, 여야가 진정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시급한 민생현안 해결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