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의 보고 과정을 조사하고 있는 국방부 감사관실이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안보실장)이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보고 받은 적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보고 여부를 떠나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가 없어 몰랐다'는 이유로 책임회피를 하는 것은 안보수장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 A4 한장 짜리 보고서가 전부?
국방부 감사관실은 지난 10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김관진 실장이 구체적인 폭행·가혹행위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당시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김 실장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게 주요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윤 일병이 사망한 다음날인 8일 오전 A4 용지 한장짜리 분량의 사건 개요를 보고받았을 뿐 가래침핥기, 치약먹이기, 수액 주사후 폭행 등 끔찍한 가혹행위의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오성 전 육군참모총장 사퇴를 끝으로 군 수뇌부에 대한 문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꼬리자르기'를 한다는 의혹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장관이 사태 심각성 인지 못한 것도 문제
설사 백번 양보해 김 실장이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 실장이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실장이 보고받은 A4 용지 한장 짜리 분량의 보고서에는 "사고자가 2차례에 걸쳐 엎드려 뻗쳐시킨 뒤 복부 폭행(물을 먹고 싶다며 숨을 거칠게 쉼)", "사망자가 '바지에 오줌을 쌌다'고 말하고 쓰러지자 사고자가 '꾀병 부린다'며 뺨 폭행(의식없음)" 등의 끔찍한 사고당일 폭행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병영부조리 확인 결과 사고자들이 사망자 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폭행한 사실이 확인됐다(계속 확인중)"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래침핥기 등 구체적인 가혹행위 내용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방부 장관으로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챙겨야 했지만 김 실장은 그러지 않았다. 이 역시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장관부터 이처럼 안일한 상황인식을 가진 결과 사건 이후 특별 군기강확립 대책회의가 열리고, 35년 만에 '폭행·가혹행위 근절 위한 육군 일반명령 14-156호'가 발령됐지만 이는 무용지물이었다.
실제로 윤 일병 사건 이후에도 '소변기핥기'(해병대), '불법 감금·금품 갈취·성추행·폭행'(육군 제2탄약창), '입에 벌레 넣기·땅바닥 핥기'(3사단 GP) 등 손에 꼽을 수도 없는 엽기적인 폭행.가혹행위 사건들이 이어졌다.
국방부 장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관련 사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폭행·가혹행위 근절을 위해 앞장서야 했지만 단순히 윤 일병 사망 사실만 공개한 뒤 몇달동안 쉬쉬하며 군 수뇌부끼리 비밀리에 만나 내놓은 대책의 결과다.
모 군 간부는 현재 상황과 관련해 "윤 일병 사건 공개 이후로 부끄러워서 외부에 군복을 입고 나갈 수 없을 정도"라며 "마치 죄인이 된 것 같고 군 전체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김 실장이 군에 갓 입대한 이등병이나 하는 '몰랐다'는 변명을 대며 현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