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에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일부 의원들까지 반발하는 건 특별검사 추천권을 포기한 상황에서 수사권 없는 진상조사위원회로는 참사의 진실을 밝힐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도 박근혜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을 밝힐 핵심 증인들이 청문회에 불참할 경우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마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유족 "수사권 없는 진상조사위는 실행력 없어" 반발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 등은 그동안 진상조사위원회의 실질적인 조사권 확보를 위해 특별사법경찰관 임명을 통한 수사권 부여를 주장해 왔다. 체포나 압수수색 등의 강제 수사 절차를 통해야 참사의 진실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여야 협상은 그러나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여당의 완강한 반대로 한 치도 꿈쩍하지 않았다. 특검 추천권을 세월호 유족이나 야당에 보장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특검 추천권을 포기하는 대신, 진상조사위를 '5(여당 추천):5(야당 추천):4(대법원장과 대한변협회장이 각 2인 추천):3(유족 추천)'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국회 운영 관련된 나머지 쟁점들을 일괄 타결했다.
이에 대해 유가족들은 "수사권이 없는 진상조사위는 의결을 해봐야 실행력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위원회가 아무리 유리하게 구성돼 있다고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의결한 내용을 어떻게 진행을 할 거냐는 부분"이라며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설사 의결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행동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유 대변인은 특별검사와 진상조사위를 연계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대통령에게 기존 방식으로 2명을 추천하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또 심도 있게 조사를 할 수 있는 검사가 임명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며 "특검보의 업무협조 역시 강제적으로 진상조사위의 의결 사항을 따르게 할 것이냐는 데 회의적이다"고 지적했다.
유족들이 수사권 부여를 고수하는 이유는 진상조사위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은 수사권이 없어 진실 규명에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당시에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반대로 수사권 부여는 실현되지 못했다.
과거사 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전직 조사관은 "의문사위에서 허원근 일병 사건을 조사했지만 끝나자마자 국방부에서 합동조사단을 만들어 결론을 뒤집어버린 전례가 있다"며 "결국은 진상조사위에서 수사권도 없는 상태에서 조사를 해봐야 조사가 제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특검에서 조사 결과를 뒤집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이 조사관은 "진실화해위의 경우 위원 구성이 야당 쪽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는데도 수사권 없이 조사된 증거에 대해 위원들이 얼마나 신뢰를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되곤 했다"면서 "실질적인 조사권 확보 없이는 위원회 구성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조사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거론되는 자료제출요구권이나 동행명령권(위반 시 과태료 3,000만원)도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징역형까지 처할 수 있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서도 기관이나 개인이 이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 세월호 국정조사 역시 성과 없이 활동 마칠 우려 높아
게다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도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다.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는 당초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증인들을 불러 청문회를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청문회는 이미 오는 18일부터로 한 차례 연기됐다.
그럼에도 여야는 좀처럼 평행선 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과 관련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정호성 부속실장에 대한 야당의 증인 채택 요구에 새누리당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직전까지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낸 유정복 인천시장의 증인 채택 역시 정치공세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는 오는 30일로 90일간의 활동을 마친다. 본회의 의결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저간의 사정과 태도에 비춰볼 때 새누리당이 찬성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25일부터는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18일부터 22일까지가 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한인 셈이다. 특히 일주일 전인 11일까지는 증인들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청문회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