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은 신장 195cm, 몸무게 100kg의 신체 조건을 가진 하든이 번개같은 순발력으로 코트를 휘젓는 모습에 일단 놀랐다. 그리고 또 놀란 장면이 있다. 하든이 레이업을 시도하는 손에 팔을 갖다댔는데 하든은 아랑곳하지 않고 힘으로 팔을 뿌리치고 슛을 던졌다.
힘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NBA 선수들이 대표팀을 이뤄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다.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등이 주축을 이룬 미국은 대회 8경기에서 평균 43.7점차 전승을 거두며 '드림팀'의 전설을 썼다.
당시 '드림팀'에 대한 상대팀의 반응을 살펴보면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상대팀 선수들은 "기량과 기술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다. 일단 힘에서 너무 차이가 크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NBA 선수들의 파워는 그동안 국제 무대에 나왔던 가냘픈(?) 대학 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센터와 포워드의 몸싸움 능력은 단연 압도적이었고 심지어 가드 포지션의 선수들 역시 웬만한 상대팀 센터 수준의 힘과 몸싸움 능력을 자랑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농구계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웨이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웨이트 열풍이 불었다. 정확히 10년이 지나 마침내 미국 대표팀의 전승 행진이 깨졌다.
한국 남자농구는 지난 해 필리핀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해 무려 16년 만의 세계대회 진출권을 따냈다. 올해 8월 말 스페인에서 개최되는 농구월드컵(舊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한달 뒤에는 더 중요한 대회가 있다. 자국 인천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이다. 12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조직력, 기술 등은 당연히 중요하다. 세계 무대에서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한가지는 바로 힘이다.
몸싸움은 장신선수가 골밑을 공략할 때, 리바운드 경합을 할 때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을 걸거나 빠져나올 때도, 패스를 받을 공간을 확보할 때도, 압박수비를 펼칠 때도 심지어 가드가 돌파를 할 때에도 힘의 차이가 성패를 좌우한다.
다음은 2년째 연임하고 있는 유재학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이 사실상 대표팀의 첫 평가전 무대였던 지난 해 7월 대만 윌리엄존스컵 초청 대회를 마치고 남긴 말이다.
"장신 센터가 있는 팀에 우리 선수들이 버티질 못한다. 이란의 하다디는 대회 평균 리바운드가 7개인데, 우리를 상대로 15개를 잡았다. 대만의 퀸시 데이비스도 그랬다. 우리만 만나면 다득점에 리바운드를 2배 이상 잡았다. 포스트업 공격 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2대2를 할 때나 골밑에서 자리를 잡을 때 상대가 밀고 들어오는 것을 버티지 못했다. 누가 슛을 쏠 것 같으면 골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리 막아야 하는데 누구도 막지 못했다"
유재학 감독은 최근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마치고도 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몸싸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비는 물론이고 공격에서도 몸싸움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또 한번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국제대회에 나설 때마다 높이는 둘째 치고 힘의 차이를 느껴왔다. 지난 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상대에 비해 턱없이 얇은 몸으로도 근성있게 버티고 또 버틴 김주성의 정신력이 없었다면 농구월드컵 티켓 확보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을지 모른다.
이란과 중국 등 아시아 강호들의 힘과 몸싸움 능력은 웬만한 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몸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는 힘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가짐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몸싸움을 기피하는 습관이 있다면 효과는 반감된다.
다시 세계 무대에 나서는 남자농구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파워다. 두려움도 없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남은 기간 해결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