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재생센터’라는 말 어디에도 똥오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 공기에 실려 그 일대에 자욱이 내려앉은 가스 냄새는 이곳이 똥오줌을 처리하는 곳이라는 걸 일깨운다.
이곳에서 정화조 청소부 김모씨를 만났다. 올해 경력 20년차인 베테랑 정화공이다. 1명의 동료와 함께 그가 타고 나타난 2.5톤짜리 분뇨수거차량 역시 겉으로는 똥차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박원순 시장이 온 뒤에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주지 않기 위해 말끔하게 박스차로 둔갑시켰죠. 고맙게도 사람들이 똥차라는 걸 못 알아보니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고요”
자기가 누구인지 못 알아봐 주는 것에 감사하다는 그를 따라 똥오줌 수거 작업에 동행했다. 이날 들어 두 탕째라고 했다. ‘탕’은 각각의 정화조에서 수거한 분뇨를 물재생센터에 하역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보통 4~5탕은 돌아야 하루가 마감된다고 했다. 두번째 탕 역시 달동네가 대상지였다.
“달동네에 가면 골목이 좁단 말이에요. 차가 들어가기 어렵지. 그러나 막 들어 가야돼. 호스를 덜 깔려면. 못 들어가는 데는 손으로 호스를 깔아야 돼. 평상시 까는 호스 길이가 50~100m정도 돼요. 여름에는 그걸 짊어지고 올라간다고 생각해 봐요. 처음 오는 사람은 못 들어. 무게도 있고 호스가 뱅뱅 꼬이거든.”
40분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달동네였다. 눈으로 봐도 경사가 꽤 높다. 아니나 다를까 40도되는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니 오른쪽에 또 다른 계단이 나타났다. 그 위에 있는 정화조 위치를 확인하고는 지름 5cm의 호스를 풀었다. 100m는 족히 돼 보이는 호스 중간 중간에는 호스를 연결하는 쇠고랑이 달려있다. 호스를 메고 언덕을 오르자 뒤따라오는 호스가 바닥을 탁탁치며 아침 골목길을 깨운다.
“아가씨. 다쳐요. 이쪽으로 와요.”
호스가 겉으로 봐서는 작게 보여도 호스에 쓸려 다리나 치아가 부러진 정화공이 많단다. 그러면서 그의 다리를 보여준다. 쓸린 자국이 마치 생채기로 얼룩진 모과열매 표면 같았다.
정화조에는 보통 1년치의 똥과 오줌이 차오르게 마련이다. 하수도법상 정화조는 최소 1년에 한번씩 정화조 청소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 비운 정화조도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호스를 정화조 깊숙이 꽂는 동안 그의 동료 정화공이 쉴 새 없이 물을 부으며 쇠막대기로 안을 저었다. 그렇지 않으면 호스가 막힌다고 했다. 정화조의 수위가 내려갈수록 김씨의 얼굴에는 땀으로 뒤범벅이 돼 갔다.
40분 만에 작업이 완료되자 서둘러 호스를 되감고 급히 차를 뺀다. 다음 목적지는 식당이다. 손님을 받기 전에 시간에 맞춰서 가야한단다. 땀을 닦으며 그가 말했다.
“출근시간에 잘 못 걸리면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려요.”
물 한모금 마실 시간 없이 30분 만에 도착한 식당 앞에서 그들은 다시 서둘러 호스를 깔았다. 식당은 그 나마 다른 곳 보다 수월하단다.
“식당 정화조는 똥보다는 오줌이 많은 편이라 빨아들이기가 쉽죠”
실제 이 식당에서는 1년치 분뇨 750리터를 비우는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두 탕째는 가정집과 식당 2곳으로 끝났다. 다시 물재생센터로 향하던 차 안에서 그는 아직도 정화조 청소업을 천대시하는 사회 인식이 힘들다고 했다.
“인식 때문에 친구가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누구에게도 직업을 말하지 못해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하찮게 보거든. 하다못해 일을 하러 가잖아? 정화조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발끝으로 ‘저거요’ 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아. 반말식으로. 천대받는다고 느끼는 거지.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일 끝나면 술도 많이 먹게 되고...”
옆에 있던 그의 동료 B씨는 자녀들이 클 때까지도 직업을 숨겼다고 했다.
“애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술한잔 먹고 이야기를 했지. 나는 부끄럽지 않은데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말을 못했다고. 만약에 중학생 때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걔들이 상처를 받았을지 몰라. 주변에서는 끝까지 이야기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따지고 보면 ‘정화공’은 지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치우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 그들이 있기에 사람 눈에 보이는 지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공간으로 남아있는지 모른다.
‘물재생센터’에 도착한 2.5톤 트럭은 기자를 내려주고 다시 야릇한 냄새 속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그 곳이야말로 인류가 숨을 쉬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공간이라는 깨우침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