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전화를 하지 말아달라"는 판사의 도발(?)섞인 부탁 혹은 비아냥이다. 물론 검사에게 향한 글이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렇게 이례적인 글을 쓰는 것은 검사님들의 전화통화에 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매듭지어진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집어 들던 수화기를 내려놓으시고, 판사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모두 건승하십시오."
익명의 판사는 검사에게 겸손을 빗대, 그것도 '전화 통화'와 관련해 도발적인 부탁 혹은 비아냥으로 들릴 문구를 내던졌을까?
이유는 편지 앞 부분부터 나온다.
그는 '그 전화통화'에 대해 이렇게 써내려 간다. "검찰의 영장청구가 기각된 후에 기각결정을 한 판사에게 그와 관련해서 걸려오는 전화 말입니다."
바로 검사와 판사 간의 신경전이 숱하게 일어나는 '영장 발부' 과정에서 판사에게 숱하게 걸려진다는 그 전화에 대해 검사, 혹은 검찰에게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 글에는 검사에게 전화를 걸지 말아달라고 지적하는 이유가 몇 가지 나온다. 그 중에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남아 이후의 (영장 발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문구다.
판사는 편지에서 영장 발부는 엄연히 법원의 재판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는 "법원의 재판이 신성불가침이라서가 아니라, 그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이룬 기본적 합의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말이다.
판사는 '영장 기각' 이후 검찰 측이 주로 할만한 반박에 대해서도 요목조목 반박한다.
"기각결정에 대한 불복수단도 마땅히 없는 현실에서 판사에게 질문마저 할 수 없다면 검찰이 결정의 실질적 이유를 확인하거나 법원의 독단·전횡을 견제할 방법이 전혀 없지 않느냐 하는 우려도 하실 법합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하지만 그런 우려가 판사의 저울을 건드리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전화통화가 확인이나 견제를 위한 적법하고 적절한 수단일까요? 법률상 검찰은 영장 기각결정에 불복할 수 없는 대신 같은 영장을 무제한 재청구할 수 있고..."라고 설명한다.
다시 편지의 앞부분을 보면, 검사의 전화가 꽤 '고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드물게나마 꾸준히 반복되는 일이고 이제 말씀드릴 바와 같이 상당히 부정적인 효과를 내는 일인 이상 일각의 우발적 사건으로만 치부하고 마냥 눈감아드리기는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해당 판사는 익명을 빌려 이런 편지를 쓰는지도 밝혀뒀다. 치밀해보인다.
"누구도 섣불리 튀는 행동을 하려 하지 않는 법원의 분위기 때문에 이제껏 방치된 면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야 할 것 같아 주제넘지만 나서게 됐습니다."
판사의 주장대로라면, 검사의 전화는 법조계의 해악(?)으로 비춰질만하다.
법조계에서는 이 글이 편지든, 공식기고문이든 검찰과 법원 사이에 해묵은 '영장 발부와 기각'의 줄다리기에 대해 공론의 장이 생긴 것은 확실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제 검사의 답장이 기대된다.' 판사의 편지를 읽었다는 법조인이 한 말이다.
검사의 답장은 언제쯤 날아들까?
*해당 편지는 [법률신문] 14일자에 익명의 기고문 형식으로 실렸으며, 기고문은 익명이지만, 법률신문 측은 해당 필자가 현직 판사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