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검증한 후 유럽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군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네덜란드 비정부기구(NGO)인 '일본명예부채재단'(Foundation of Japanese Honorary Debts)은 이날 헤이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과거사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얀 판 바흐튼동크 재단 대표은 "고노 담화를 검증하고 담화 문구가 한국과 외교적 협상을 통해 작성됐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사실을 조사하겠다면 유엔인권위원회의 후원하에 역사학자와 법률가가 독립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판 바흐튼동크 대표는 대사관 앞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을 발표하고서 주네덜란드 일본대사에게 성명서를 직접 전달했다.
일본군 점령 피해자와 그 가족들로 구성된 일본명예부채재단 회원들은 매달 두 번째 화요일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4년 처음 시작된 시위는 이날로 236회를 맞았다.
이날 시위에는 2차 대전 당시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네덜란드인 생존자와 그 가족 30여 명이 참가했다.
70∼90세의 고령 참가자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2시간가량 진행된 시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시위에 참가한 호흐 스테인(88) 씨는 "일본은 2차 대전 당시 아주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만, 독일과 달리 진지하게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위안부 등 일본군 피해자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단 회원들은 일본군 희생 피해자들에 대한 묵념을 한 뒤 포로수용소에서 불렸던 '포로의 노래'를 제창하면서 시위를 마무리했다.
재단은 앞서 지난달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 결과가 발표되자 네덜란드 총리에게 검증 결과 문제점을 지적하며 일본 총리에게 항의해 달라고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일본군은 2차 대전 중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점령해 약 11만 명의 네덜란드인을 수용소에 강제 억류했다.
작년 8월에는 일본군 점령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네덜란드 여성 8명의 경험을 담은 '상처입은 꽃'이라는 제목의 수기집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