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칠레의 호르헤 세페다 판사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 직후 발생한 미국인 할스 호먼(31)과 프랭크 테루기(24) 피살사건에 전직 미 해군 대령인 레이 E. 데이비스가 개입됐다고 밝혔다.
세페다 판사는 "미국 군 정보부가 칠레 군 장교들에게 이들의 사망으로 이어진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세페다 판사는 또 칠레의 퇴역 대령 페드로 에스피노사를 살인 혐의로, 전직 정보부 요원 라파엘 곤살레스를 공범 혐의로 기소하기로 한 결정을 확인했다.
세페다 판사의 조사결과 피노체트가 주도한 쿠데타 당시 미군 칠레 작전단 사령관으로 비밀 첩보작전의 일환으로 칠레내 미국인들을 조사하던 데이비스는 칠레 해군 정보장교 라울 몬살베에게 호먼과 테루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몬살베는 이 정보를 칠레 함동참모본부 정보국에 전달해 두 미국인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피노체트의 군부독재가 종식된 후 구성된 국가진실위원회는 호먼이 1973년 9월 17일 체포돼 보안요원들에 의해 구금된 상태에서 다음날 살해됐으며 테루기 역시 9월 22일 살해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에스피노사, 곤살레스와 함께 기소된 데이비스는 칠레에 숨어 살다가 지난해 산티아고의 한 양로원에서 사망했다.
아옌데의 중도좌파 정책을 지지하며 미국에 비판적인 소식지를 발행한 호먼과 테루기의 죽음을 소재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1982년 제작한 영화 '미싱'은 오스카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영화는 호먼이 피살된 사건에 미국이 연루됐음을 시사해 당시 미 국부부 관리들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한동안 거의 묻혀 있다가 호먼의 부인 조이스가 2000년 피노체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주목을 끌었다.
조이스는 "남편이 살해된 지 40여년만에 호먼과 테루기 사건이 칠레 법정에서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면서 "법원이 수집한 증거기록이 호먼이 왜, 어떻게 표적이 됐는지, 누가 남편의 살해를 지시했는지 등을 밝혀주길 비란다"고 말했다.
호먼과 테루기 측 변호인인 세르지오 코르발란은 이번 판결은 유족들의 오랜 믿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환영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칠레의 첫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대통령 정부를 무너뜨린 피노체트가 집권한 17년간 인권탄압 피해자는 4만여 명, 사망·실종자는 3천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