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에서 퇴출된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는 12일(현지시간)에도 티크리트를 거점으로 남쪽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을 모색하는 등 정부군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 있다.
ISIL의 최근 바그다드 북쪽 사마라 공격에 대응해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하고 나서는 등 종파 분쟁의 양상도 감지된다.
일각에서는 수만 명의 희생된 2006∼2007년과 같은 전면적인 내전으로 발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총리의 입지가 약해져 향후 정국 운영과 3선 연임을 위한 연립정부 구성에 난항도 예상된다.
◇ ISIL '남으로 남으로'…남부 시아파 성지도 위협
ISIL은 10일 니네바주의 주도이자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을 장악한 데 이어 하루만인 11일 살라헤딘주의 주도 티크리트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올해 초 점령한 서부 안바르주 라마디 일부와 팔루자 전체에 이어 니네바주와 살라헤딘주까지, 중앙정부가 관할하는 15개 주 가운데 3개(20%)를 사실상 장악한 셈이다.
ISIL은 이날 오전 현재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진 우드하임 마을까지 진격해 정부군과 교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부 무함마드 알아드나니 ISIL 대변인은 "우리는 풀어야 할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바그다드까지 진격할 것"이라면서 시아파 성지인 남부의 카르발라와 나자프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ISIL이 이처럼 정부군을 손쉽게 몰아내고 이라크 서북부를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알말리키 총리의 시아파 우선 정책에 대한 수니파 주민들의 뿌리깊은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ISIL이 장악한 서부 안바르와 북부 니네바 주 모두 수니파 밀집 지역으로 ISIL을 지지하는 주민이 상당수에 이른다.
아울러 치안과 안보를 담당하는 이라크 군경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ISIL의 '파죽지세'와 같은 진격이 가능했던 원인으로 꼽힌다.
군인 28만 명을 비롯해 이라크의 치안과 안보를 담당하는 군경 인력은 93만 명에 달하지만 전투력과 정보, 수송 능력 등의 부족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된다.
모술과 티크리트 등지에서 정부 군경은 ISIL에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후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ISIL은 모술 점령으로 다량의 현금과 장갑차 등 군사장비를 확보한 데다 교도소에서 2천500명에 달하는 죄수를 석방시켜 전투력을 대폭 강화했다고 중동 현지 일간지 걸프뉴스는 분석했다.
◇ 바그다드 북부 전선서 장기 대치 가능성
전력을 강화한 ISIL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지만 바그다드 점령이 그리 녹록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일단 ISIL의 전투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점령한 곳이 대부분 이슬람 수니파 밀집지역으로 저항이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전날 티크리트 점령 전후 ISIL은 안바르 주의 바이즈와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10㎞ 떨어진 사마라를 공격했으나 정부군 등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위에 그쳤다.
이라크 최대 정유 시설이 있는 바이즈에서는 쿠르드자치정부(KRG)의 군 조직인 페쉬메르가가 이라크 정부군을 도와 ISIL을 물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마라는 수니파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지만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 사원의 관리감독권을 두고 이라크 시아파와 수니파가 대립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스카리 사원에서 2006년 2월23일 발생한 알카에다 연계 수니파 무장단체의 폭탄테러는 종파 분쟁이 내전으로 치닫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라크 정부군이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으로 사마라로 진격하는 ISIL을 막아낸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시아파 성직자인 알사드르가 3천 명 규모의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 바그다드 북부로 보낸 것도 ISIL의 남진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밖에 수도 바그다드를 지키는 군경이 이라크 서북부의 군경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KRG의 군 조직인 정예 민병대 페쉬메르가의 존재도 이라크 분쟁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요인이다.
KRG 정부는 ISIL이 공격을 시도한 키르쿠크 지역을 페쉬메르가가 완전히 장악했다고 12일 공표했다.
이라크 현지의 복수의 소식통은 "ISIL이 사마라부터는 쉽게 내려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ISIL과 정부군이 바그다드 북쪽에서 전선을 형성한 채 장기 대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의 대체적인 관측"이라고 전했다.
◇ 알말리키 총리 입지 약화…의회 '비상사태 동의' 부결
현지의 관측대로 대치 상태가 이어지며 전면적인 내전으로 치닫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번 사태로 알말리키 총리의 입지는 상당히 약해질 전밍이다.
3선 연임을 노리는 알말리키 총리의 법치연합은 지난 4월30일 총선에서 전체 328석 가운데 92석을 얻어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총리 선출에 필요한 재적 과반(165표)에는 한참 모자라 최소 2∼3개에서 많게는 5∼6개의 정치 세력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쿠르드계는 이번 총선에서도 앞으로 연정 구성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주요 정치 세력으로 꼽힌다.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디스탄애국동맹(PUK)이 각각 25석과 19석을 차지하는 등 쿠르드 계열 정당이 확보한 의석을 모두 합하면 53석에 달한다
2006년 처음 총리에 취임한 알말리키는 2010년 총선 당시에도 9개월간의 정파 간 대립 끝에 쿠르드를 포섭, 극적인 연정 합의를 이뤄 재선에 성공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 이라크 중앙 정부는 ISIL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KRG에 지원을 요청했다.
연정 구성을 위한 아쉬운 소리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군사지원까지 요청한 셈이다. KRG는 최근 중앙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터키를 경유한 석유 수출을 시작했다
이날은 중앙정부와 관할권을 놓고 대립 중인 키르쿠크 지역을 장악했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두 사안 모두 알말리키 총리로서 양보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지만 이번 사태로 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이날 이라크 의회에서는 알말리키 총리가 요청한 비상사태 선포에 대한 동의가 의사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다.
알말리키 총리가 향후 3선 연임을 확정하기 위한 연립정부 구성 과정에 난항이 예상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