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집단자살로 내몰았나?"

[임기상의 역사산책 33]충격과 의문만 남긴 '인민사원'과 '오대양 사건'

◈ "미국에 못 돌아가게 다들 사살하라~"

지금부터 36년전인 1978년 11월 18일, 남미 동북부에 있는 가이아나의 정글 한 복판에 있는 카투마 공항.

신흥종교 '인민사원'이 건설한 존스타운을 둘러 본 미국 연방 하원의 레오 라이언 의원은 카메라맨과 신자, 신자 가족들 34명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2대의 경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섰다.

이 순간 자동차를 몰고 온 괴한들이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라이언 의원은 벌집이 되어 사망하고, NBC-TV 카메라 기자 등 4명이 숨지고, 11명은 중경상을 입고 쓰러졌다.

나머지 19명은 경비행기에 서둘러 타고 가까스로 탈출했다.


끝내 이륙하지 못한 라이언 의원의 경비행기와 시신들.
부하들로부터 습격 사실을 보고 받은 인민사원의 교주 짐 존스는 '최후의 밤'을 시작했다.

집합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자 농장 마당에 1천 명이 넘는 신도들이 모였다.

평소 예행연습 때처럼 일렬로 선 신도들에게 청산가리가 든 보랏빛 음료수가 건네졌다.

짐 존스가 "이제 우리가 딴 세상에서 만날 순간이 왔다"고 영생 선언을 외치자, 어린이들이 먼저 독배를 들었다.

아이들이 죽은 것을 확인한 어른들이 뒤를 따랐다.

짐 존스도 자기 가족들을 몰살하고 제단 위에서 마지막으로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렇게 해서 인민사원에서 살던 신자의 90%인 914명이 독극물이나 총질로 사망했다.

이 가운데 267명은 18세 이하 미성년자였다.

급보를 받고 출동한 가이아나 군대가 인민사원에 달려왔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후였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인민사원 사태를 보도한 잡지들의 표지. TIME지 사진에 독극물 '시안 화합물'을 탄 쥬스 용기가 보인다.
어떻게 해서 이런 참극이 발생했을까?

◈ 촉망 받는 진보적 성직자로 출발해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변모한 '짐 존스'

"여러분이 나를 아버지로 본다면 나는 아버지가 없는 분들을 위한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당신의 구주로 본다면 나는 당신의 구주가 될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북부에 '인민사원'이란 교회를 차린 교주 짐 존스는 수천 명의 신도를 모았다.

짐존스는 치유의 은사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악마야~ 물러나라"고 소리를 치면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기적들이 다 사기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긴 했다.

그는 흑인 등 약자를 위한 빈민 구제 활동도 벌이고, 무료 식당. 탁아소. 노인병원을 운영했다.

인민사원의 홍보 포스터. 짐 존스는 인종과 관계없이 많은 아이들을 입양하였다. 저 가운데 3명이 한국계였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짐 존스는 진보적 성직자 이미지를 버리고, 전통적 기독교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예수, 부처, 레닌 등의 '신적인 존재의 현신'이라고 주장하고, 신도들은 그를 '구세주' 또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격화했다.

그러나 점차 신도들 사이에 이탈이 시작됐다.

소수의 신자들이 존스의 성령 치료가 조작된 것이고, 신도들에 대한 재산 탈취와 폭행 사례를 폭로했다.

언론과 수사당국의 주목이 시작되자, 짐 존스는 해외에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 가이아나의 밀림에 사교집단 근거지를 차리다

1973년 남미 동북부 가이아나 서부의 정글에 짐 존스의 왕국 '존스타운'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브라질과 인접한 가이아나의 지도. 동북부 바다 쪽에 존스타운이 건설됐다.
1974년부터 집단 이주가 시작됐다.

최종적으로 이주한 신도는 1,200명에 달했다.

신도들은 '바깥 세상의 사악함이 존재하지 않는 열대의 낙원' 이라는 광고를 믿고 일가족을 이끌고 밀림 속으로 들어왔다.

신도들의 기대가 절망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존스타운은 소수의 백인들이 흑인이 대부분인 신도들을 착취하는 강제노동수용소였다.

가이아나 이주 초기에 '존스타운'의 건설 현장에서 포즈를 취한 짐 존스와 측근들
신도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중노동에 시달렸고, 복잡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가혹한 징벌이 내려졌다.

언제부터인가 존스타운에서는 집단자살 연습이 일상적으로 실시됐다.

신경안정제가 섞인 음료수를 독이라고 속이고 계속 마시게 했다.

1978년에만 이런 연습이 무려 43회에 걸쳐 실시됐다.

짐 존스는 "함께 죽음으로~ 그 이후에는 다른 혹성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설교했다.

이런 엽기적인 행태는 편지 등을 통해 조금씩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레오 라이언 의원, 시찰단을 구성해 존스타운을 방문하다

레오 라이언 하원의원. 임기 중에 피살당한 유일한 하원의원이다.
1978년 11월 14일 선거구 주민의 제보를 받은 미국 연방 하원의 라이언 의원은 기자들을 포함한 19명의 시찰단을 구성해 존스타운을 방문했다.

처음에 시찰단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국내에 들어온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기자 한 명이 꽉 잠긴 건물에 병에 걸린 노인들이 갇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 어느 신자가 감시망을 뚫고 "우리들을 여기서 탈출시켜 달라"는 쪽지를 보내오면서 환상이 깨졌다.

옥신각신 끝에 라이언 의원 일행은 16명의 귀국 희망자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35명의 일행이 비행장으로 출발하자 짐 존스는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쫒아가서 다 죽여라"


이렇게 해서 피의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2008년에 거행된 "존스 타운"의 집단자살 30주년 추도회.
존스타운의 집단자살은 2001년 9.11 테러 이전에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아닌 사건으로 미국 국민이 가장 많이 죽은 사건이다.

라이언 의원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재임 중에 살해당한 연방 하원의원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다큐멘타리 영화로 재현되고 수많은 연구 논문을 통해 분석됐지만, 집단 자살의 원인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교주와 그 측근들이 다 죽었기 때문이다.

◈ 인민사원의 집단자살, 9년 후 한반도에서 재현하다

존스타운에서 집단자살 사태가 벌어지고 9년이 지난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리에 있는 주식회사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에서 3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집단자살 사태가 발생한 오대양 건물. 강력계 형사들조차 '악마의 향연'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건 현장은 처참했다.
공장식당 천장에서 오대양의 박순자 대표이사를 포함한 여자 28명과 남자 4명이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시신의 무게에 못이겨 천장 일부가 무너지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처음에는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집단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등이 이 사건의 배후에 구원파와 유병언 당시 세모그룹 회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두 차례 수사를 벌여 오대양이 사업을 벌이다 89억원의 사채를 쓴 사실은 밝혀냈으나 유 회장과의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

대신 신도들의 헌금 등 11억원을 챙겼다는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는 오대양 관계자들이 전원 자살해 증언해줄 사람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유 회장이 구속되고 22년이 지난 후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유병헌 씨 일가족과 측근들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다시 오대양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의 지난 5월 6일 홈페이지 뉴스 사회면 <구원파 신도, 인천지검 앞 종교 탄압 반대 집회> 제하 등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와 관련, 검찰 수사 결과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5공 정권의 비호설, 세모그룹 회생 등과 관련한 정관계 로비설 및 정치적 망명 · 밀항설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한편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는 탈퇴신도를 미행 · 감시하는 팀이 교단 내에 존재하지 않으며, 해당 교단은 평신도들의 모임으로 특정 개인을 교주로 추종한 사실이 없고 이용욱 전 해경국장은 해당 교단 신도가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또 '김엄마'와 '신엄마'가 해당 교단에서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총괄 지휘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교단에서 '엄마'는 결혼한 여신도를 편하게 부르는 호칭이라고 밝혀왔습니다.

그리고 유 전 회장 유족 측은 '유병언 장학생'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제약 김혜경 대표가 유 전 회장의 비서를 역임하거나 비자금 등을 관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높낮이 모임'을 통해 유 전 회장이 관련 회사 경영에 관여한 바 없고, 세월호 증개축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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