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방송 KBS 공영도 낙제, 쇄신도 낙제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 거주지와 실명을 밝힌 시민들이 KBS의 공영성 회복을 염원하며 내걸은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KBS의 전 직군 전 직급이 나서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새노조는 지난주 93% 투표율에 94.3%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했고, PD 600여명은 23일 하루 24시간 제작을 거부했고, 전국의 기자들도 19일부터 제작을 거부하고 있다. KBS 2곳의 노조와 기자·피디 등 7개 직능단체는 청와대 앞에서 사장 퇴진과 보도 개입 의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 국민의 방송이 청와방송이라니…

언론학자 144명이 KBS정상화 촉구선언도 내놨다. 방송학자 232명도 정상화 촉구 선언을 발표됐다. 그동안 '청와방송', '종박방송'이라는 불명예스런 별칭으로 불리던 KBS로서 개혁과 쇄신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나라 공영방송이든 권력과 돈의 공격을 받는다. 기술에서는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상업방송들이 앞질러 나가고, 정치세력들은 늘 방송을 이용하려 한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혁'뿐이다.


10년 전인 2004년은 세계 공영방송들의 분기점이 된 해였다. 스페인이 먼저 나섰다. 새로 집권한 사파테로 총리가 과거 권력자의 입맛대로 왜곡보도를 하면서도 누적적자는 12조원에 이른 공영방송을 향해 칼을 뽑았다. 집권 하자마자 공영방송 사장을 갈아치우고 '방송개혁위원회'를 설치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권력과 공영방송의 은밀한 관계를 끊지 못하면 사회발전은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과도한 형식적 민주주의가 문제가 됐다. 독일의 제2 공영방송인 ZDF 경우 이런 저런 정당, 이해집단 들에서 파송한 대표들 77명을 모시고 '방송위원회‘를 꾸려가야 하는데 이익단체들의 간섭이 심해지며 독립성이 오히려 훼손되어버렸다는 지적이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방송위원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결정해 개혁에 나섰다.

영국 BBC도 공정성 시비가 일면서 보도기준을 정비했고 "권력자나 권력기관 보도는 상업적 또는 정치적 압력과 무관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 공영도 낙제인데 쇄신도 낙제…

경영도 나빠져 자구책들을 내놨다. 독일 ARD는 4년 내로 1,290명의 정규직을 해고해 경비를 줄임으로써 국고지원을 덜 받아 5.8%의 시청료 인하 효과를 발생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미 수신료를 인상하는 걸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구조조정이 끝난 2006년 이후에나 시행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올려주시면 개혁함으로 보답하겠다는 게 아니라 개혁을 먼저 해보일 테니 저희가 실천하는 걸 보시고 시청료를 올려 달라는 것.

BBC는 직원 2,900명을 줄이고 예산 중 6천5백억 원을 잘라내겠다고 약속하면서 경영진이 저희들 월급을 먼저 깎겠다고 나섰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수신료를 내고 싶은 방송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실천에 나섰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TV도 앞으로 5년간 임금을 동결할 테니 경쟁력 있는 공영방송을 위해 재원을 확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우리 공영방송은 '저희 봉급 수준 그렇게 세지 않아요'라는 해명 기사에 '수신료 인상이 공영방송의 기반'이라고 비싼 광고를 쏟아 붓지만 개혁은 그 이후로 미룬다.

KBS1TV '뉴스9' 최영철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길환영 KBS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문제는 겉으로는 그럴싸하니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혼탁한 지배구조, 임명구조, 권력구조부터 청산해야 한다. 겉과 달리 속에서는 권력과 아부와 파벌과 충성경쟁을 동력으로 삼아 굴러가는 적폐를 잘라내야 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어느 나라 국민의 대표방송 사장이 대통령의 뜻을 언급하며 눈물까지 보이겠는가. 국민을 뒤에 둔 것이 아니라 임명자를 위에 모시고 있기에 보일 수 있는 태도이다.

이는 태생적인 문제이다. 국영방송, 관제방송, 관변방송을 거치면서 정치권력이 민영방송인 동아방송, 동양방송까지 빼앗아 KBS에 넘겨주었다. 덩치로만 국민의 대표방송이지 그 내면은 관영방송이자 상업방송의 먹물을 빼내지 못한 불안정한 공영인 것이다. 그래서 시청률 경쟁과 권력 눈치보기가 관행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틀을 바꾸려면 적당한 개선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국가가 관여하고 있는 모든 방송과 통신의 지배구조, 문제점들을 국민에게 샅샅이 뒤집어 내보인 뒤 전면개조의 차원에서 공영방송의 틀을 다시 짤 일이다.

이미 외부로부터는 개혁과 쇄신의 요구가 30년 째 이어져 온 KBS이다. 내부 모든 직능 모든 직급으로부터 개혁과 쇄신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지금이 스스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임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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