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기지 운영의 실질적인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는 EGS는 한미 양국의 합의로 1997년 처음 마련된 이후 2004년, 2012년 두 차례 개정됐다.
EGS는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지침이기 때문에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으며 따라서 개정사실 조차도 이날 처음 공개됐다.
CBS노컷뉴스가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을 통해 EGS 전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12년 개정판이 상당수 개악된 흔적이 발견됐다.
우선 제6장 <유해 폐기물, 지정폐기물>에는 기존에 있던 폐유, 유기용매 폐기물, 합성 중합체 폐기물 등 유해(또는 지정) 폐기물의 매립, 소각, 중화, 시멘트 응고 등의 처리 기준이 삭제돼 있다.
처리기준이 삭제됐다는 것은 유해 폐기물을 처리할 필요나 의무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휘발유, 오일, 윤활유(POL)에 의해 오염된 토양에 대한 처리 기준 마저 삭제돼 주한미군에게 부과된 TPH(석유계총탄화수소, 발암물질) 최소 정화 의무도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18장 <유출사고 예방, 대응계획>에는 2004년 개정판에 명시된 우리측의 배상청구에 대한 처리 조항도 삭제됐다.
동시에 누출 책임이 있는 주한미군에 부과했던 배상 책임 조항도 없어졌다.
한국정부에 누출 사실을 보고할 의무 조항도 약화됐다.
2004년 개정판에는 영외 유출사고는 물론 한국 식수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내 유출사고에 대해 한국당국에 ‘즉시’ 보고해야한다(shall notify)고 돼 있었다.
그러나 2012년 개정된 EGS에는 유출사고가 영외에서 발생한 경우 미군 내부 보고 후 한국 소방서에 추가로 알린다(will notify)로 바뀌었다.
한국 식수원에 영향을 미치는 영내 유출사고의 경우는 한국도 통보받는다(will be notified)고 후퇴했다.
‘한국에 보고해야하는 환경사고’에 대한 정의 자체도 삭제됐음은 물론이다.
이 장의 제목도 당초에는 ‘누출사고 예방, 대처계획, 보고’였으나 이 가운데 ‘보고’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유출 사고에 대한 미군 내부 보고 기준과 관련해서도 당초 각종 유해물질의 종류와 유출량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적시됐으나 ‘중대한 유출이 발생한 경우 보고’로 뒷걸음질했다.
당초 우리정부는 이 장에 사람과 자연에게 영향을 주는 사고 뿐 아니라 사고 원인물질의 장기간 잔류가 예상되는 사고도 보고 대상에 포함하려 했지만 미군측의 요구로 되레 양보한 셈이다.
EGS에는 이 밖에 독소조항도 가득하다.
제1장 <서론>에는 각종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현재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not currently available) 자금의 실질적인 지출이 요구될 때는 EGS 이행을 포기하거나 불이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아무리 중대한 환경오염이라도 정화 비용이 많으면 정화를 하지 않겠다는 생떼나 다름없어 보인다.
제9장 <휘발유, 오일, 윤활유>에서는 유류저장 시절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주변 토양오염 검사나 오염토양 정화 등은 빠져 있다.
이들 조항 역시 미군 기지의 환경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과 관리 관행을 명시했다는 EGS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염치없는 조문으로 읽힌다.
주한미군 환경문제에 정통한 K 교수는 "환경부가 아무리 협상을 하려 해도 미군이 SOFA 얘기를 하면 (환경부는) 결국 끌려가고 그 회의(환경분과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SOFA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에는 '국내 환경법령을 법을 존중한다'고 돼 있으나 이 모든 것은 선언적 의미일 뿐 반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때문에 SOFA 협정에 미군의 환경범죄에 대한 행위자 처벌과 환경정화비용의 지불, 오염피해에 대한 구제의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한 미군의 무책임한 행동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