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천년 수도 교토를 만든 것은 우리 조상들이었다
- 교토에서 유명한 문화재들, 모두 삼국시대에 건너간 사람들이 지어
- 세종이 패륜 사건 접하고 삼강행실도 제작을 지시한 것에서 배워야 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5월 14일 (수)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 정관용>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다들 잘 아시죠? 명지대 유홍준 석좌교수를 오늘 초대했습니다. 최근에 국내에 이어서 일본으로까지 시선을 돌리셨고. 일본의 세 번째 이야기 교토편이 내일 출간됩니다. 그래서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명지대 석좌교수 유홍준 교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 유홍준>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정년 퇴임하셨지만 여전히 명지대학에 계시죠?
◆ 유홍준> 네. 강의 한 과목하고, 대학원. 그리고 나머지는 글 쓰고 있죠.
◇ 정관용> 연구실에 그냥 그대로?
◆ 유홍준> 그대로 있습니다.
◇ 정관용> 요즘 책 굉장히 많이 내세요?
◆ 유홍준> 요즘에 책 쓸 시간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 그동안 준비해 왔던 것이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추수하는 것이 좀 빨랐다, 그렇게 봐주시면 되겠네요.
◇ 정관용>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란 이름으로 국내편이 모두 몇 권 나왔죠?
◆ 유홍준> 현재 7권 나왔고요.
◇ 정관용> 7권. 그리고 일본 쪽으로 가셔서...
◆ 유홍준> 지금 세 번째.
◇ 정관용> 첫 번째가 규슈 그다음 아스카·나라, 이번에 교토.
◆ 유홍준> 교토죠.
◇ 정관용>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이름으로는 모두.
◆ 유홍준> 10권.
◇ 정관용> 10권이네요.
◆ 유홍준> 네.
◇ 정관용> 앞으로 몇 권 더 나옵니까?
◆ 유홍준> 국내편이 세 번 내지 네 번은 더 써야 끝날 것 같고요. 일본편은 하나를 더 쓰면, 이제 교토의 명소들 쓰면 일본은 거기서 끝내려고 그래요.
◇ 정관용> 교토만 2권으로 하시는 거군요.
◆ 유홍준> 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본 역사에서 교토는 우리 경주 같아서 천년 수도였기 때문에 유물의 비중이 또...
◇ 정관용> 1권으로 안 되죠.
◆ 유홍준> 안 되고. 일본의 본질, 진수, 해답 다 거기에 있죠.
◇ 정관용> 저는 사실 처음에 일본편 나오시는데 첫 권이 규슈라서 좀 놀랐어요. 왜 교토부터 안 쓰시나 하고요.
◆ 유홍준> 순서대로 쓰니까요. 처음에 우리 한반도에 쌀농사를 가지고 건너간 도래인 이야기는 규슈거든요. 그리고 이제 아스카·나라는 불교를 갖고 가서 고대국가로 키운 거고. 교토에 와서 일본 문화가 자기화하면서 국풍문화라고 하는 것으로 넘어가게 되니까.
◇ 정관용> 무슨 문화요?
◆ 유홍준> 나라 국자에다가 바람 풍자.
◇ 정관용> 국풍.
◆ 유홍준> 네, 민족적인. 가나가 발명돼서 겐지모노가타리도 나오고. 또 와카라고 하는 일본 노래도 나오는 게 다 12세기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그 토대를 쌓은 것은 우리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라고 불리는 이민, 이민들이죠. 그러니까 한반도 사람들의 이민의 역사가 교토 개척사가 되니까. 그 앞부분은 지금...
◇ 정관용> 아! 그래서 규슈 그다음 아스카·나라 그리고 이제 교토.
◆ 유홍준> 네.
◇ 정관용> 책 앞장을 딱 펼치면 우리 교수님의 자필로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이렇게 돼 있고. 이걸 아예 딱 인쇄를 하셨어요, 책에다가.
◆ 유홍준> 네. 지난번부터 독자들이 원해서 본문 속에 나오는 글 중에 좋은 걸 하나 써 달래서.
◇ 정관용> 무슨 뜻이죠, 이게?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 유홍준> 그게 제가...
◇ 정관용> 있는 그대로네요.
◆ 유홍준> 있는 그대로죠. 그 문화사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유물과 함께 기억을 하면 생생하게 기억이 돼요. 그러니까 유물을 유물 따로 문화재를 따로 공부하고 또 정치사, 외교사, 전쟁 이걸 해 놓으니까 역사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안 들어오는데. 유물과 함께 배우게 되면 그 시대에 어째서 고려청자가 그렇게 찬란했던가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일본 역사를 우리가 배운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본에 여행을 지금 뭐 하루에 1만 명이 오가는데 그 사람들이 가서 용안사에 갔다가 금각사에 갔다했을 적에 그게 가마쿠라시대에 만들었다 그러면 가마쿠라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 정관용> 모르죠. 그냥 멋있다 하고 구경만 하는 거죠.
◆ 유홍준> 네, 그렇겠죠. 그게 1000년 전인지, 500년 전인지, 200년 전인지 모르잖아요.
◇ 정관용> 모르죠.
◆ 유홍준> 그런데 이것을 우리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를 하고. 그다음에 그러한 유물이 나올 적에 일본의 선종이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가 어떻게 자기화했는가. 이런 걸 위해서는 하여튼 ‘역사는 유물을 낳았고, 그 유물이 역사를 증언한다’인데. 그런데 그 말이 굉장히 멋있잖아요.
◇ 정관용> 멋있어요.
◆ 유홍준> 그런데 저게 내가...
◇ 정관용> 그러니까 유물을 가지고, 유물을 통해서.
◆ 유홍준> 그런데 저게 내가 한 말처럼 썼는데 난 저걸 누가한 말을 그렇게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렇게 멋있는 말을 여태 가만 놔뒀을 리 없을 것 같은데.
◇ 정관용> (웃음) 예.
◆ 유홍준> 그래서 찾아보기도 했어요. 무슨 말을 번역했는데 아직까지는 저렇게 워딩을 한 것은 아직 못 찾아서 그냥 썼죠.
◇ 정관용> 그냥 유홍준 교수님 것으로 하죠.
◆ 유홍준> 그냥 그러죠. (웃음) 아는 만큼 보인다도 마찬가지고.
◇ 정관용> 그리고 이 책머리에 ‘교토 답사의 미적분 풀이’라고 하셨는데 이 미분, 적분 풀 만큼 그렇게 복잡하다는 얘기입니까?
◆ 유홍준> 아, 나는 미적분은 몰라요. 수학1을 했으니까. 그런데 미적분은 어쨌든 어렵고 그다음에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만 알고 있죠. 이 말을 쓴 건 교토에 절이, 교토부에 3030개가 있어요.
◇ 정관용> 와!
◆ 유홍준> 신사가 1700개가 있어요. 약 5000개의 신사와 절이 있는 곳인데. 그중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만 17개예요.
◇ 정관용> 캬!
◆ 유홍준> 그러니까 일본이 자기네들이 교토가 있다고 자랑할 만하죠.
◇ 정관용> 네.
◆ 유홍준>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여행을 하게 되면 동쪽 갔다, 서쪽 갔다, 남쪽 갔다, 북쪽 갔다 이렇게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시간을 절약해서 많이 보는 것 같지만 이게 1200년 전 유적을 보다가 500년 전 것 보다가 다시 800년 전 것을 보고, 이렇게 섞이게 되잖아요.
◇ 정관용> 맞아요. 그러니까 그걸 시간대별로, 연대별로.
◆ 유홍준> 연대별로 해야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연대별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 또 낭비잖아요.
◇ 정관용> 또 어렵죠.
◆ 유홍준> 그러니까 이것을 시간적인 줄거리와 공간적인 배치를 어떻게 잘 교합을 하면 좋겠는가. 그러다 보니까 이게 미적분으로 풀어야 된다고 하고. 그리고 그 해답으로 1권에서는 역사 순서로 서술했고 2권에서는 지역별로 해서 명소를 설명하는 걸로 나간 것이 내가 풀어낸 답인데.
◇ 정관용> 그래서 교토를 답사하려면 며칠쯤 걸립니까?
◆ 유홍준> 3박 4일로 두 번 가면 대충 볼 수가 있는데. 또 요점 정리라는 게 있잖아요. 요점 정리로 3박 4일을 권하고 싶고요.
◇ 정관용> 한 번에?
◆ 유홍준> 그래서 책 권말 부록에 두 달 전에 한 번 시험적으로 했던 3박 4일 코스를 시간표대로 해서 지도하고 같이 넣었어요.
◇ 정관용> 어디 갔다, 어디 갔다 이렇게 해라?
◆ 유홍준> 네. 몇 시에 비행기 도착해서...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게 바로 미적분 푼 정답이군요.
◆ 유홍준> 정답인지 몰라도 내가 풀은 정답.
◇ 정관용> 유홍준표 정답.
◆ 유홍준> 네.
◇ 정관용> 아까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 그 진하승.
◆ 유홍준> 네.
◇ 정관용> 신으로까지 모셔진 사람. 어떤 분인지 또 이 교토에 어떤 흔적들이 있는지?
◆ 유홍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반가사유상 있잖아요?
◇ 정관용> 네.
◆ 유홍준> 그게 진하승이 지은 광륭사에 모셔져 있어요. 신라에서 보내 준 것을 진하승이 세운 광륭사에 모셔져 있으니까 도래 불상의 아주 상징이죠. 교토가 아직 수도가 되기 전 이야기예요.
◇ 정관용> 대략 몇 세기?
◆ 유홍준> 600년 무렵이죠. 620년 무렵이에요. 신라 통일하기 전에요. 그런데 아스카 지역은 백제 사람들이 많이 활동을 했어요, 도래한 사람이. 신라 지역에서는 이 분이 울진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어찌됐던 120현인을 데리고 왔다고 그래요. 그 사람, 그렇게 온 사람들이 성이 제 각각일 텐데. 이 사람들을 진나라 진자를 쓰고 하타 씨라고 했어요. 이 하타 씨가 결국은 교토를 개척을 해요. 그리고 100년, 150년 지났을 때 진하승이 등장해서 이 사람이, 이 분이 성덕태자라고 불리는 쇼토쿠태자의 브레인 역할을 했어요. 내가 아는 얘기가 아니고 일본 역사가 그렇게 씁니다. 그리고 재무상까지 했어요. 그리고 교토가 본래 엄청난 습지였습니다. 판판한 곳이요. 그때 이 하타 씨들이라고 하는 울진 사람들이 가서 제방을 쌓았어요. 그래서 그 습지를 전부 농지로 전환을 시켰어요. 오늘의 교토는 한반도에서 온 신라에서 온 하타 씨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교토 역사의 정설이고. 그리고 결국은 이 분이 비단을 또 일으켜서 그 교토에 니시진 비단이라고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요. 그게 바로 광륭사 아래쪽에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럼 이 분은 도대체 못하는 게 뭐예요? 절 짓는 건축도 잘하고.
◆ 유홍준> 사업 그다음에 능력가였는데.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겁니다. 아일랜드 사람이 존 F. 케네디가 아일랜드 사람인 걸 모른다는 건 조금 미안한 일이죠. 진하승이 교토를 개척해서 했던 그 사람인데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 사람 이름을 모른다는 건 미안한 일이에요, 진짜.
◇ 정관용> 맞아요.
◆ 유홍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진하승이라는 사람이, 조상이 200년 전에 교토에 가서 교토를 개척해서 일본 사람으로 살았던 거죠. 그렇잖아요. 4대, 5대가 지났는데. 그러니까 존 F. 케네디를 여전히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그것도 잘못된 거죠.
◇ 정관용> 문제 있죠.
◆ 유홍준> 문제 있죠.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건너갔던 이민 성공 사례에 카네기가 스코틀랜드 사람이잖아요. 그것이 한-일 관계의 친선적 관계를 증명해 주는.
◇ 정관용> 그러니까 우리 신라인들이 가서 교토를 일궜다.
◆ 유홍준> 개척했다, 네.
◇ 정관용> 그러나 그들은 이제 일본 사람이 된 거죠.
◆ 유홍준> 된 거죠.
◇ 정관용> 그리고 교토의 문화는 일본 문화가 된 거죠.
◆ 유홍준> 돼 가는데 끊임없이 우리의 영향을 받다가 그다음에 또 당나라하고 직거래하다가 결국은 일본 문화를 만들죠.
◇ 정관용> 네. 바로 그 분이 지은 절이 광륭사. 직접 건축기술도 그럼 이 분이 다 전파한 거네요.
◆ 유홍준> 그렇지는 않고. 그 집단이, 도래인 집단에 기술자들이 많았고.
◇ 정관용> 120여 명 그 분들이?
◆ 유홍준> 네. 그다음에 이 집안이 진하승뿐만 아니라 진씨들이 퍼져서 그 아라시야마라고 하는 관광지에 송미신사라고 주신을 모신 신사가 있어요, 술. 그것도 하타 씨가 한 거고. 교토 아래 후시미에 이나리신사라고 농업신을 모신 게 있는데. 그 일본의 신사가 12만 개가 있어요. 그 12만 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거가 이나리신사라고 농사신을 모신 곳이에요. 이게 하타 씨들이 가서 한 거예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게 마을마다 새로 신사를 만들려면 근거가 있어야 되잖아요.
◇ 정관용> 네.
◆ 유홍준> 그 근거를 가져가서 일본 각지에 이나리신사가 4만 개가 있어요. 그러니까 유머를 써서 프랜차이즈 신사가 4만 개가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가? 이나리신사가 어느 때 되니까 농사신은 놔두고 딸린 신사로 사업번창 귀신을 모셨어요. 그러니까 어디에서고 새로 상가에서 신사 하나 지으면 이나리신사를 거기에서 받아서 모시고. 12만 개의 신사 중에 4만 개가 하타 씨가 지어놓은 그 신사라고 하는 것으로 우리 도래인의 역할이 얼마나 컸나 알고.
◇ 정관용> 알겠습니다.
◆ 유홍준> 또 하나 얘기 드리고 싶은 것은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적인 유흥가가 기온이죠, 기온.
◇ 정관용> 네.
◆ 유홍준> 기온 거리에 지금 게이샤가 지금도 있고 찻집이 있고. 거기에 야사카신사라고 하는 것이 기온의 랜드마크 같은 곳인데, 그건 고구려 사람들이 세운 신사예요.
◇ 정관용> 그래요?
◆ 유홍준> 네. 기온마츠리가 한 달을 두고 하는 거가 그 최종 종점이 야사카신사에서 끝나는데. 그게 고구려 사람들이 만든 신사예요.
◇ 정관용> 그럼 신라 사람, 고구려 사람 다...
◆ 유홍준> 다 갔죠.
◇ 정관용> 그랬군요.
◆ 유홍준> 그 교토가면 누구든지 반드시 가는 교토 관광 온 사람의 70%가 간다는 기요미즈데라라고 청수사가 있어요.
◇ 정관용> 청수사.
◆ 유홍준> 그 위에 올라가면 교토가 쫙 보이는 게 마치 우리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보는 것 같은 멋진 풍광이 있어요. 그 청수사를 세운 사람은 백제계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라고 백제 도래인 후손의 장군이었어요. 일본의 쇼군이라고 부르는 제일 초대 쇼군이 다무라마로인데. 그러니까 교토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면서도 우리 조상들의 자취가 결국은 오늘의 교토를 이루었다.
◇ 정관용> 우리 모르죠.
◆ 유홍준> 몰랐죠. 내 책 제목이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하는 제목으로 한 것이 민족적 프라이드도 있잖아요.
◇ 정관용> 그런데 그 교토에 신라, 고구려, 백제가 다 들어가 있군요.
◆ 유홍준> 다 흔적이 그대로 있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 문화가 찬란하게 꽃 핀 곳이 또 교토인데. 백미를 꼽는다면 교토의 어디입니까?
◆ 유홍준> 우지에 있는 평등원이죠. 우지는 바로 그 아래 차로 유명한 곳인데. 후지와라라고 하는 사람들이 섭정을 했는데. 정권을 잡았는데. 헤이안 정권이 400년이 있는데 100년은 천황이 실권을 해요. 200년은 후지와라 씨 집안이 실권을 쥐고. 그리고 마지막 100년은 우리로 치면 대원군이지. 천황의 아버지가 실권을 쥐는 거예요. 그 200년 기간의 마지막에 후지와라 미치나가 집안에서 극락세계를 구현한다고 지은 집이 평등원이에요.
◇ 정관용> 평등원.
◆ 유홍준> 네, 뵤도인인데. 이게 일본 동전 10엔짜리에 나오는 집이 그 집이에요. 그런데 이집이 지어지고 그 12세기에 일본에 이런 민요가 나와요. ‘극락이 의심스러운 자는 우지의 평등원으로 가봐라, 극락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자는 우지의 평등원으로 가봐라’. 실제로 우지 평등원은 그런 개념으로 지었고. 또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내 책의 표지도 우지 평등원으로 했어요.
◇ 정관용> 가서 보시면 진짜 극락처럼 보입니까?
◆ 유홍준> 아, 정말 환상적이죠. 이게 5, 6년 동안 보수해서 지난 4월 1일날 리오픈했는데. 이 집의 콘셉트를 보면서 내가 한탄스러운 것이 이 집 보면 밑에 연못이 있어서 거꾸로 비치잖아요.
◇ 정관용> 그러네요.
◆ 유홍준> 이게 우리 불국사의 구품연지의 아이디어의 그대로 벤치마킹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아래 71년에 복원하면서 그걸 흙으로 덮었거든요. 그거 연못으로 해야 돼요 그렇게 되면 그 평등원의 한 다섯 배 되는 그 크기가 거꾸로 비쳤을 때.
◇ 정관용> 알겠습니다.
◆ 유홍준> 재미있어요?
◇ 정관용> (웃음) 이 책이 좀 두껍고 어려워서요. 찬찬히 공부한 다음에 한번 교수님이 추천해 주는 코스대로 한번 가봐야 될 것 같고. 좀 다른 얘기 좀 하죠, 뭐.
◆ 유홍준> 사실 제가 서문을 썼는데. 이거 국내편처럼 읽기는 참 힘들고 또 우리가 일본을 왜 알아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잖아요. 어차피 일본하고 우리는 동아시아의 동반자로서 같이 가야 돼요.
◇ 정관용> 가야죠.
◆ 유홍준> 그런데 일본이 참 더티하게 나오잖아요.
◇ 정관용> 맞아요.
◆ 유홍준> 이게 사실 아베가 저런 망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그렇다고 같이 이전투구 할 수 는 없는 거고.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이 세종대왕이 삼강행실도를 만들 때의 생각을 했어요. 오륜행실도라고 하는 게 삼강행실도 플러스 이륜행실도예요. 삼강행실도를 세종대왕이 왜 만들었느냐 하면 세종이 즉위하고 얼마 안 됐으니까. 조선 건국하고 30년 됐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생겼어요, 김해에서. 이거는 지금도 그런 패륜이 있지만 불교를 억불하고 유교의 가치로 이데올로기를 삼아서 건국한 입장에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건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죠.
◇ 정관용> 천인공노할 짓이죠.
◆ 유홍준> 그래서 조정에서 난리를 쳐서 능지처참을 해야 된다. 형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하니까 그 젊은 세종대왕이 경들의 말이 옳지만 어쩌다 인륜이 이렇게 됐는가에 대해서 우리 반성해 보자, 본래의 모습을.
◇ 정관용> 아!
◆ 유홍준> 신 아무개는 역대에 훌륭한 충신과 열녀와 효자 110명을 뽑아서 그들의 전기와 함께 삽화를 넣어서 삼강행실도를 만들어라. 그래서 6년 후에 나온 책이 삼강행실도예요.
◇ 정관용> 그러니까 벌주고 꾸짖는 것만이 아니라 가르칠 것은 가르치자.
◆ 유홍준> 국민을 교화해야,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 훈민정음을 결정적으로 만든 계기도 거기 있었는지 모르지만.
◇ 정관용> 알겠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화도 내지만 가르칠 것도 가르쳐 주자.
◆ 유홍준> 그렇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 일어판으로도 곧 나온다고요?
◆ 유홍준> 네. 이와나미에서 전체를 다 번역하겠다고요.
◇ 정관용> 이와나미 출판사에서요?
◆ 유홍준> 네.
◇ 정관용> 그럼 일본편 것만 번역을 하는 거겠죠, 물론?
◆ 유홍준> 그렇죠. 국내편 3권은 이미 번역이 돼 있어요. 일본에서요. 그리고 그들도 검토를 여러 가지 했겠지만.
◇ 정관용> 일본에는 일본 사람이 쓴 이런 식의 책은 없나보죠? 문화유산답사 식으로.
◆ 유홍준> 일본이 참, 나와바리라고 불리는 이 영역이 굉장한 나라예요. 그러니까 역사하는 사람은 역사만 쓰고, 미술사는 미술 쓰고, 문학은 문학 쓰고, 기행문은 수필 쓰고.
◇ 정관용> 종합해 놓은 게 없군요.
◆ 유홍준> 종합해 놓은 게 없고. 그다음에 한국인은 일본을 어떻게 보는가, 이런 코멘트요. 그런 것이 그들로써는 뭐, 가치 있다고 생각한 거겠죠.
◇ 정관용> 네. 일어판까지 나오면 좀 더 제대로 일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너무 짧아요. 말씀 듣다 보니까 벌써 끝내야 되겠네요. (웃음) 유홍준 교수, 오늘 고맙습니다.
◆ 유홍준> 감사합니다.
◇ 정관용>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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