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서] "먼저 가서 미안해요"…남겨진 자의 슬픔

먼저 가서 미안하고 자식에게 미안하고…이마저도 부러운 남겨진 가족

지난 9일 한 여학생이 체육관을 가로지르며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엄마, 00 찾았대" 안경 넘어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울먹였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25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아들 생각에 목 구멍은 좁아지고 입 안에는 가시가 돋힌 듯 밥 한 숟가락도 제대로 못 삼키고, 행여나 아들 소식이 들려왔을 때 깊은 잠에 빠졌을세라 눈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했던 엄마는 "하!" 짧고 굵은 탄식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퀭해진 눈에 핏기가 사라진 얼굴, 머리카락은 푸석해질대로 푸석해진 엄마는 떼쓰는 아이 마냥, 체육관에 주저앉아 두 다리로 바닥을 마구 차며 오열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우는 엄마에게 친언니가 할 수 있는 말, 전부였습니다. 이모는 엄마의 등을 다독이며 체육관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그동안 입었던 옷이며, 세안 도구, 생필품 등 주섬주섬 챙기고 보니 한 가방에 가득 차더군요. 근 한 달을 체육관에서 지내면서 살림살이도 제법 늘었나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27일째인12일 오전까지 실종자가 29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자녀를 찾은 가족들이 안산으로 떠나면서 진도 실내체육관에 빈자리가 늘고 있다.

두어 시간을 한 마디 말도 없이 눈물만 흘리던 엄마는 눈물이 말라버렸는지 정신이 이제야 좀 든 건지 얼굴을 두 손으로 몇 번을 비비더니 옷을 추스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며 챙겨뒀던 구호품과 직접 친언니가 싸온 간식 등을 옆자리 남은 가족에게 조심스레 건넸습니다.

"먼저 가서 미안해요…"

가늘게 새어나오는 엄마의 첫 마디었습니다.

"저희도 곧 올라갈텐데요…축하드려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엄마의 손을 옆 반 엄마가 꼭 잡아줬습니다.


엄마는 일어나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으며 마음도 단단히 먹는 듯 했습니다. 아들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선뜻 체육관 문을 나서지 못했습니다. 벌써 체육관이 익숙해진걸까요. 엄마는 언니와 딸의 손을 뿌리치며 자꾸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했습니다.

언니는 혼란스러워하는 동생을 짜증과 눈물이 섞인 말투로 타이르며 잡아끌었고, 엄마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자꾸 뒷걸음질쳤습니다.

"미안해서 어떻게 봐, 난 못 봐. 아니 안 봐. 미안해서 못 봐"

이윽고 시신이 운구된 헬기장에 도착하자 엄마는 또다시 주저앉았습니다.

"엄마, 가자. 조금만 더 가면 00이 있어. 엄마 제발 이러지마"
"야, 너가 이러면 00이 어떻게 가니? 아들 생각해서라도 얼른 일어나"

주저앉은 엄마를 아무리 일으켜도 엄마는 주저앉고 또 주저앉았습니다. 딸과 언니가 엄마의 양 팔을 잡고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는 탓에 엄마의 윗도리가 다 벗겨저 맨살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마치 땅 속에서 누군가의 팔이 뻗어나와 엄마의 두 발목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엄마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성 자원봉사자 두 분이 다가와 엄마를 양 쪽에서 부축한 뒤에야 엄마는 한 걸음을 겨우 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자원봉사자들과 취재진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좋겠다…"

어쩔 수 없이 체육관으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가족들이었습니다.

아직 자녀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진도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자녀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우리도 빨리 가야할텐데…" 정문 근처 게시판에 붙은 '00번째 시신 발견' 종이를 떼며 한 아버지가 읇조렸습니다. 조금 전에 체육관을 떠난 가족의 아들 것이었습니다.

만지고 싶은 아들 얼굴 대신, 내 아들의 인상착의 전단지가 언젠가 붙여질 게시판을 스윽 어루만졌습니다.

더 주지 못하고 자식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엄마의 미안함, 이제 체육관에 얼마 남지 않은 가족들을 두고 먼저 떠나는 미안함, 그리고 "나도 곧 저렇게 되겠지" 불안해하면서도 부러워하는 가족들.

누가 이렇게 만든 걸까요? 왜 자식 찾아 떠나는 게 미안하고, 아들 녀석이 보내달라던 수학 여행, 힘들게 번 돈 쥐어주고 보내줬을 뿐인데 엄마는 왜 아들한테 미안해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아들이 숨이 멎은 사실을 실감하는 것을 왜 다른 가족들은 축하해야만 하는 걸까요?

22일째 진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풍경을 볼 때마다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자녀를 찾았다"고 연락주시는 학부모께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뭔 또라이 같은 소리야?"라는 유행어처럼 "또라이 같은 상황이 눈 앞에 연일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제 어떤 막장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시시할 것 같습니다.

남은 가족들은 "마지막 한 구 나올때까지 열심히 수색하겠다"던 대통령의 말씀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붙들고 있지만, 분명한 건 대통령께서 외치신 '비정상의 정상화'는 이곳 진도만큼은 확실하게 비껴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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