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속수무책인 국가 권력에 대한 분노도, '어린' 세대를 저버린 '어른' 세대를 목격한 데 따른 부끄러움도 사회 전체에 깊이 스며든 모습이다.
영화계에서도 애도와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 감독들의 심정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회상을 외면할 수 없는 문화예술 창작자로서 몹시도 참담해 보였다.
기성세대인 그들은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희생자의 대다수라는 점에서 자기 세대에 대한 분노와 부끄러움을 나타냈다.
A 감독은 "세월호 참사는 지금까지 봐 왔던 어떠한 재난보다 감정이 이입돼 슬프고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한 시민으로서 부모로서 감당해내려 애쓰고 있다"며 "배가 가라앉는 과정을 TV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고, 뉴스를 의식적으로 피하면서도 구조 소식이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결국 다시 보게 된다"고 전했다.
B 감독은 "기성세대의 무책임한 행동과 사회전반에 만연해있는 무사안일주의가 만들어낸 인재를 접하면서 '내가 죄인인데 누구를 탓하겠느냐'는 마음이 앞선다. 너무 죄송하고 눈물이 흐르고 스스로에게 분노하게 된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끊임없이 반성하고 수양을 쌓고 무조건 염원하면서 서로의 생채기를 보듬어 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언론 보도와 SNS를 보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보다는 특정 사람들을 비난하는 극단적인 분위기로 끌고 가려는 점이 보여 안타깝게 다가온다"며 "그런 보도와 SNS를 보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흐름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도 하게 되더라"고 했다.
■"세월호는 모순 가득한 우리 사회 축소판"
C 감독은 "'위장전입 정도야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한 일인데 뭐가 잘못이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위 리더로 불리는 사람들의 생각인데, 그들이 배를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에게 특별한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높은 곳에 올라서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잘못된 상식을 심어 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서민들의 '공생' 정서에 반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승자독식에 대한 인식 전환이 없다면 이러한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작자로서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목소리도 있었다.
D 감독은 "지금의 심정은 오로지 비통함과 참담함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데 분노가 차오르기도 한다"며 "10여 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등을 비롯해 이번 일도 결코 잊히면 안 된다. 스스로의 반성 위에서 이러한 참사들을 계속 환기시켜야 한다는 데 고민이 커졌다"고 했다.
E 감독은 "이번 일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에 자기 반성적인 부분을 모두들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며 "언론에서 추정에 근거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앞으로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거라 믿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