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논리에 발목잡힌 운동권 애창곡…'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 이 인쇄된 손수건. 자료사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곡 지정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또다시 충돌했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는 14일 정상화되지 못했고, 한 달여 앞으로 다가운 5.18민주화운동 제34주년 기념식은 반쪽이 될 위기다. 1980년 이후 30년 넘겨 불려온 민주화운동의 대표곡인데다 호남의 정서에 직접적인 자극을 줄 수 있어 지정곡 논란이 6월 지방선거의 이슈가 될 수도 있다.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핀 건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였다. 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상임위원회 여당 간사들을 소집해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것만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 형평성을 고려해 어렵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그는 "5·18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현재 애국가나 광복절, 3·1절 등 5대 국경일 노래도 기념곡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주목받았던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이 반박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강 의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을 거부하는 것은 국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문제는 불과 1년전만 해도 의외로 쉽사리 해결될 것 같았다.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이 가결됐고 당시 투표 의원 200인 가운데 161인이 찬성했는데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 원내대표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논리가 바뀌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갖는 상징성과 정치적 정체성 때문에 보수진영에서 이 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는데 강하게 반대하고 나온 것이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지난해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서는 "국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해 기념곡 지정을 신속하게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답변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추진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견돼 지금 고민하고 있다"며 유보적으로 돌아섰고 정홍원 국무총리도 지난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반대 여론이 있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고 쐐기를 박았다.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김용태 간사와 새정치민주연합 김영주 간사, 강기정 의원이 5.18 공식 기념곡 지정 논란과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문제는 급기야 국회의 발목을 잡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국회 정무위는 이 문제로 14일 오전에 법안심사소위를 열지 못했다. 보훈처의 업무보고는 이튿날로 연기됐다. 15일에도 보훈처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4월 국회에서 정무위 법안 처리는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5.18단체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5·18 34주년 기념행사위원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거부는 5·18의 가치를 부정하는 의미로 보고, 정부의 기념식 행사를 전면 보이콧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표와 직결된 정치권에 진영논리가 작용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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