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완취안(常万全) 중국 국방부장> "우리는 관련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영토와 주권, 해양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결의를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 "미국 정부는 주권문제에 대해 중립을 유지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분쟁은 강압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2014년 4월 8일 중국 베이징 바이다러우(八一大樓:중국 국방부 청사)>
◆ 헤이글 장관> "필리핀과 일본은 미국의 오랜 동맹이며, 양국과 맺고 있는 조약을 준수하는데 전념하겠다. 미국은 중·일 갈등과 관련해 일본을 보호할 것이다."
◇ 창완취안 부장> "중국은 영토수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군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짐짓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며 완곡히 속내를 표현하던 미중 양국 국방장관은 7개월여 만에 다시 만나 '전쟁 불사론'까지 거론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이어진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내연(內燃) 하던 미국과 중국의 불협화음이 수면위로 분출하고 있다.
중일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과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남중국해 문제, 미국의 신형 무기 대만 판매, 홍콩 정치 자유 사안까지 상대방에 대한 강력한 불만이 잇따라 제기됐고 이견과 갈등이 있어도 가능한 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충돌의 이면에는 다분히 미국이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헤이글 장관은 중국 방문에 앞선 일본 방문과 아세안 국방장관 회의 참석 자리에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센카쿠 열도 분쟁을 거론하며 '중국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중국 방문을 코 앞에 두고 일본과 필리핀의 편을 들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밀려버렸다는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의 위기감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나 중동 등 다른 지역의 정세가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아시아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오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격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 2월 안보문제 전문 월간지 '내셔널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에 '대만이여 안녕'(Say Goodbye to Taiwan)이란 글을 기고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중국이 강해질수록 아시아에서 미국을 몰아내려고 시도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대만포기 가능성까지 제기했는데, 구체적인 사례로 과거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통해 미 대륙에서 유럽을 몰아낸 과정을 열거했다.
먼로 독트린은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이 1823년 유럽이 남북아메리카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한 것인데 국제법적 효력은 없었지만 현상 변화에 큰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가 '중국판 먼로 독트린'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중국 국내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중국이 당장 힘으로 상황을 변경시키려 하지는 않겠지만 전략적 방침은 그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중국의 핵심이익은 국력부상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동중국해와 태평양 해상에서 확대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만 대학생들이 입법원을 점거하고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과의 경제통합을 저지하고 나선 것은 대만 학생들도 현실적인 중국의 팽창에 대한 미어샤이머 교수의 시각에 동의하면서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행동에 나선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선포한 이후 유럽 제국과 미국 간에는 무력 분쟁이 한동안 계속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영토수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군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중국 국방부장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인지 미국과 중국은 이미 잘 알고 있고, 어떤 우발적인 사태가 빚어질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면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운신의 폭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지나친 우경화 행보와 그릇된 역사인식 문제로 한국의 대(對)일본 외교나 협력은 실종된 지 오래이다.
일본은 사실상 한국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납치자 문제를 거론하며 북한과 당국 간 대화를 지속하며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중국은 과거사를 지렛대 삼아 대(對)일본 전선에 한국을 끌어들이고 있고, 한국은 북한 견제를 위해 중국과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여기에 미국은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나 우경화 문제는 외면한 채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일 협력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말 헤이그에서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 당시 어정쩡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한국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중 간, 중일 간 갈등 속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고, 국가간 협력 방안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한국 주도의 창의적인 외교는 가능한 것인가.
잿빛 하늘로 뒤덮인 베이징에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