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금강산에서 64년을 기다린 딸 춘순(68), 아들 진천(65) 씨와 재회한 지 44일 만이다. 김 할아버지는 6·25 전쟁통에 만삭이던 처와 어린 남매를 친척집에 두고 잠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북쪽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구급차에 실려 금강산으로 향했던 김 할아버지는 상봉 첫날 비좁은 구급차 속 침대에 누운 채 자녀를 만났지만 결국 이튿날 건강 악화로 상봉을 중도에 포기하고 조기 귀환해야 했다.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다.
지난 상봉 때 김 할아버지와 동행했던 남쪽 아들 진황(52·서울 성북구 정릉동)씨는 8일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에게 부친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금강산에서 북녘 자식을 보시고 나니 그리움의 한을 놓으신 것 같다"며 "자식 된 도리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이 소식이 알려져 통일에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진황씨는 "통일이 되면 유골은 북녘 형제들에게 보내려고 한다"며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전할 길이 없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아버지는 금강산에 다시 가고 싶어했다"며 "64년의 한을 풀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김 할아버지는 금강산에서 북쪽 아들, 딸과 헤어지기 직전 '여한이 없느냐'는 진황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딸 춘순씨는 그런 김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되면 만나요"라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지만 결국 마지막 인사가 되고 말았다.
김 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군인으로,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됐다.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지난 제19차 이산가족 상봉은 이산가족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 생사확인 등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이번에 숨진 김 할아버지를 비롯해 상봉 과정에서 건강 악화로 중도 귀환하거나 치매로 혈육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졌고, 상봉 전부터 숨지거나 만남을 포기하는 이들도 속출했다.
면회 수준의 짧은 만남 뒤 또다시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탓에 불면증과 허탈감 등 '상봉 후유증'을 호소하는 상봉자들도 적지 않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공동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9천410명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45.3%에 이르는 5만 8천599명이 숨졌다. 생존자는 7만811명뿐이다.
특히 최근 10년 사이 급속한 고령화로 매년 4천 명의 이산가족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