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내전이 계속되는 시리아에 끝까지 남아 피난민을 돕다가 7일(현지시간) 무장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프란시스 반 데르 뤼흐트(72) 신부의 순교자적 삶이 잔잔한 반향을 낳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란시스 신부가 주변의 만류에도 시리아 홈스 지역에 계속 남기를 원했다면서 그의 죽음으로 실의와 충격에 빠진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예수회 소속인 프란시스 신부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시리아 홈스에서 수십 년 살면서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시리아 사회의 일원으로 여겨졌던 인물이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정부군과 반군의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면서 소수 기독교인이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도 프란시스 신부는 이슬람 반군의 보호를 받을 정도였다.
아랍어에 능통하고 정신치료 훈련도 받았던 그는 홈스 외곽에 장애인 지원센터를 세워 장애인을 돕고 종교가 다른 이들 사이의 대화를 주선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반군이 홈스를 장악하고 정부군이 이에 맞서 이 지역을 포위하는 상황이 1년 넘게 계속되면서 그에게 호의적이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식량 등 구호품 전달 통로가 막혀 주민들이 기아와 질병의 극심한 고통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신부는 지난 1월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굶주림에 도덕은 사라졌다. 인간이 야생동물로 바뀌고 있다"고 당시 참상을 묘사했다.
이후 일시 휴전으로 약 1천500명의 주민이 기아와 질병을 피해 홈스를 빠져나갔지만 프란시스 신부는 계속 홈스에 남아 난민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그들과 고통을 나누길 원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시리아 예수회의 한 신부는 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곳에 남겠다는 건 그의 자발적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내전이 발생하기 전 그와 하이킹을 한 적이 있다는 시리아인 베셰르 알-함위는 "그의 죽음은 무엇보다 시리아에, 그리고 네덜란드에 큰 손실"이라고 애도했다.
신부를 피살한 무장괴한의 신분과 살해 동기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활동가들은 그의 죽음이 홈스가 극단적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홈스 인근 마을인 탈비세흐의 반정부 활동가 마흐무드 타하는 NYT에 "신부의 죽음은 반군들에게 충격적인 사건(scandal)"이라며 "반군들이 점점 과격해져 이제 자신들 이외에는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