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선 ‘회군은 없다’는 원칙론에 무게가 실린다. 무공천의 정당성을 강변하던 ‘약속 대 거짓’의 프레임이 깨질 수 있고, 야권 통합의 명분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통합 이후 ‘새 정치’의 빛이 바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마당에 안 대표 스스로 정치 개혁의 우선 과제로 제시한 무공천을 이제 와서 포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실제로 안철수 대표는 7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입법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대한민국 정치를 크게 바꾸자는 자부심을 가지고, 현명한 국민을 믿고 앞으로 나가자는 결심을 다시 한번 굳히게 된다”며 “국민이 약속 지키는 후보를 선택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무공천 원칙으로 정국을 정면돌파한다는 기조 아래 다양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안 대표 측 핵심관계자는 “공천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건 절대 생각도 않고 있다”며 “단식과 삭발, 전면적인 장외 투쟁 같은 방식을 제외한 서너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4월 국회에서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하기 위한 입법을 관철시키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 등에서 여러 차례 “선거의 규칙이 두 개일 수가 없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은 4월 국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법안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 원내지도부는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와 임시국회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도 공직선거법 개정 등 기초공천 폐지 입법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굳이 당내 반발을 무릅쓰며 무공천을 받아들일 리는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기초연금 등 다른 법안과 연계 처리하는 방안도 거론하지만 역시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음으로 무공천 ‘원칙’을 ‘현실’로 바꿔버리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 현재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새정치연합 소속 기초선거 출마자들을 한꺼번에 탈당시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당을 떠나는 후보자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당의 소속감을 높이는 방안이다. 나아가 ‘무공천이 현실이 됐다’며 거듭된 회군 요구를 잦아들게 할 수도 있다.
당의 다른 관계자는 “가령 전국의 기초선거 출마자 수천명이 한 자리에 모여 집단으로 탈당식을 하며 ‘무공천’을 홍보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당에서는 이 같은 기조 아래 이르면 8일 김ㆍ안 대표가 ‘무공천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을 선언하고 당 차원에서 지방선거 체제로 본격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간판인 안 대표가 전국을 돌며 유권자들을 상대로 무공천 결정의 어려움과 불가피성을 널리 알리고, 대선 공약을 깬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거짓 대 약속’의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선거판세가 야당에 유리하지 만은 않게 돌아가면서 회군론, 공천불가피론이 더욱 큰 세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무공천의 외길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는 지도부는 명분 뿐아니라 승리라는 실리를 챙겨야할 책무도 동시에 부여받고 있어 고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