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정몽준…두 동창생은 왜 멀어졌나?

[소종섭의 시사포인트]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는 박근혜와 정몽준

박근혜 대통령과 정몽준 의원. (자료사진)
정몽준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1964년 2월 서울 장충초등학교를 함께 졸업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서로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안면을 튼 것은 한 테니스 모임에서였다. 정 의원이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한 1988년 이전이었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셈이다.

정 의원은 "(박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지기 전까지)여러 번 운동을 함께 했다. 테니스 모임 사람들과 여수 등 지방에 가기도 했고,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받기도 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둘 다 정치에 뛰어들면서 우정에 금이 갔다. 최근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전에서 벌어지는 '朴心(박심)' 논란이 상징적이다. "박심은 김황식 전 총리에게 있다"는 말이 회자되면서 정 의원은 동창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모양새다. 박근혜와 정몽준, 30년 지기 두 초등학교 동창생은 왜 멀어지게 된 것일까.

2002년 두 사람은 얼굴을 붉혔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었다. 이때부터 급속도로 관계가 나빠졌다.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당시는 한국미래연합 대표 시절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 축구팀의 남한 방문을 제안해 허락을 받았다.

북한에서 돌아온 박대통령은 대한축구협회(당시 회장 정몽준)에 연락해 북한 축구팀이 오기로 했으니 대표팀과 경기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축구협회는 각 프로구단에 통사정을 해 간신히 대표팀을 소집했다. 남북한 축구 경기가 열린 2002년 9월 초, 박 대통령은 상암경기장에서 만난 정 의원에게 화를 냈다.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냐는 것이었다. 또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붉은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친 것에 대해서도 정 의원에게 따졌다.

정 의원은 "하지 말란다고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했으나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정 의원은 2011년 펴낸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박 대통령은)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약속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후한 평가를 내린 반면 나는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고 씁쓸함을 표현했다.


그 해 11월, 정 의원과 박 대통령은 다시 만났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박대통령은 정 의원을 돕고 있는 강신옥 변호사 얘기를 꺼냈다.

강 변호사는 정 의원이 이끌던 국민통합21의 창당기획단장을 맡고 있었다. 강 변호사와 정 의원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인연이 있다.

박 대통령은 정 의원에게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시해한 사람(김재규)을 변호한 이를 어떻게 중용할 수 있느냐"며 식사 시간 내내 강하게 따졌다.

강 변호사는 결국 다음날 창당기획단장을 사퇴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 일로 회복 불능 상태가 되었다.

박 대통령은 얼마 뒤 한나라당에 복당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고, 정 의원은 막판에 바꾸기는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단일화 하는 길을 택했다. 정 의원은 2007년 12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 이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2010년 세종시 이전 문제를 놓고 벌어진 '미생지신(尾生之信)' 공방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정 의원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미생이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고 말했다.

세종시를 행정수도가 아닌 기업 및 교육 중심도시로 만들자는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대통령을 '고지식한' 미생에 비유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었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정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든 뒤 "나도 박근혜 대통령 팬클럽 회원이다"라며 서울 신당동의 박정희 전 대통령 옛집을 방문하는 등 '朴心 얻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 대통령의 높은 인기, 서울 지역 원외위원장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두 사람의 긴장 관계가 주목된 데는 이런 악연 외에 정치 상황도 영향을 끼쳤다. 만약 정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한다면 본인 의지와 관계 없이 새누리당 내 '차기주자 0순위'로 떠오를 수 있다. 집권 2년 차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박 대통령이 원할 리 없다.

정 의원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건 안 되건 박 대통령과의 갈등 관계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된다면 '차기'와 관련해서, 안 된다면 '朴心 배후설'을 제기하며 反朴 목소리를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봄날이지만 두 동창생들에게는 봄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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