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금까지 훈장을 수여한 광복군 유공자가 실제 광복군 인원보다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미 훈장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본인 스스로 광복 이후 입대했다고 밝힌 사람도 고스란히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963년 광복군 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A씨.
그러나 국가보훈처가 지난 1991년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했을 때 A씨는 본인 스스로 자신의 광복군 입대일을 1945년 8월 21일이라고 써냈다.
A씨와 같은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던 B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B씨는 스스로 써낸 확인서에서 광복 일주일전 중국에서 탈출, 광복 나흘 뒤인 1945년 8월 19일에야 광복군에 입대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 심사기준은 최소 광복 6개월전 광복군에 입대한 사람에 한해 훈장을 주도록 하고 있다. 해방을 전후해 개인 영달이나 보상을 노리고 입대한 사람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이 보훈처로부터 입수한 당사자들의 ''광복군 복무사실 확인서''에 따르면, 최소 15명 이상이 광복을 전후해 광복군에 입대했다고 스스로 작성했다.
이미 15년전인 1991년 본인들 스스로 서훈 자격 위배 사실을 밝힌 셈이지만, 보훈처는 40년이 넘게 이들의 서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명확한 사료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들 주장만으로 서훈을 조정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에서다.
보훈처 관계자는 CBS와의 통화에서 "당시 인(人)보증으로 훈장받은 사람들인데, 근거가 있어서 준 것 아니겠느냐"며 "딱히 명확한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들 주장만으로 다시 등급을 바꿀 수 없어 그냥 존치했다"고 해명했다.
1945년 4월 임시정부 군무부가 의정원에 보고한 광복군 총 인원은 3백 39명. 그렇다면 지금까지 광복군으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은 사람은 몇 명일까.
보훈처 관계자는 "지금까지 광복군 활동으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모두 564명"이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또 관련 법규에 따라 독립유공자 포상기록을 보존 관리해야 하지만, 관계자는 "1963년 서훈 당시의 심사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배보다 배꼽이 크게, 훈장만 눈덩이처럼 늘어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