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현 정치 지형을 보나 여론의 분위기를 보나 그의 당선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이집트의 차기 대선은 올해 6월 이전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엘시시가 당선된다면 이는 이집트 최대 권력 집단인 군부의 재집권으로 해석된다.
이집트는 엘시시가 차기 대통령에 오른다면 1952년 공화국 체제 출범 이후 5번째 군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게 된다. 군부가 핵심 권력을 거머쥔 지난 60년간의 정치구도로 복귀하는 것이다.
군부의 이익을 수호할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또다시 등극하게 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고나서 이집트의 역대 정식 대통령 6명 가운데 5명이 군 출신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장군 출신인 무함마드 나기브(1953~1954 집권)와 가말 압델 나세르(1956~1970 집권), 안와르 사다트(1970~1981 집권), 호스니 무바라크(1981~2011 집권)가 그들이다.
집권 1년만에 쫓겨난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2012~2013 집권)가 유일한 민간 출신 대통령이다.
이집트 군부와 국영 매체는 무르시 정권 붕괴 후 엘시시의 대선 출마를 노골적으로 촉구해 왔다.
지난해 7월 무르시 전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정권 축출을 주도한 엘시시는 대중으로부터 숭배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집트는 지난 2011년 시민혁명을 통해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퇴진시킨 이래로 끊임없는 정정불안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엘시시는 국정을 다시 안정시킬 강력한 지도자이자 '구원자'로 여겨진다.
이집트 여론조사 기관' 바시라'가 최근 실시한 가상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엘시시는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51%가 그에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현재 엘시시를 제외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인물은 좌파 정치인인 함딘 사바히 정도가 있으나 당시 조사에서 1% 지지에 그쳤다.
최대 도전세력이자 무르시의 권력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이미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정부의 무력 진압과 사법적 처벌 등으로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이런 맥락에서 엘시시는 당선되는 데는 최적의 조건에 놓여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그가 시민혁명과 무르시 정권 축출을 거치면서 양 극단으로 분열된 이집트 사회를 다시 화합으로 이끌 적임자인지는 여전히 회의론이 인다.
영국 런던에 머무는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이브라힘 무니르는 AFP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엘시시의 그림자 아래서는 이집트의 안정과 안보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집트가 경제 침체와 시나이반도 테러 세력의 발흥 등 각종 문제에 직면한 가운데 엘시시의 국정운영 능력이 거의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은 우려 대상으로 지적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정책 사안에 대한 엘시시의 관점이 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엘시시는 무르시 축출 이후 사실상의 국가 원수가 됐음에도 구체적인 정책 비전 등에 대해 거의 공개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엘시시가 국론 통합과 실업·에너지난 등 민생 현안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여론도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카이로대의 하산 나파 정치학 교수는 "(엘시시에게) 화해를 위한 진정한 계획이 없다면 그는 분명히 실패할 것"이라며 "그럴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로이터 통신에 지적했다.
군부에 등을 돌린 일부 싸늘한 민심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군부는 지난해 6월30일 무르시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될 때만 해도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엘시시가 반정시 시위가 지속하던 그 다음달 3일 무르시 축출을 발표하자 이집트 국민 수십만 명은 카이로 민주화 성지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앞에 모여 군부를 지지했다.
그러나 군부가 지난해 8월 카이로 라바광장에서 시위대에 발포한 내용이 국내외 언론에 공개되면서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당시 무력진압으로 무르시 지지자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 군경과 시위대의 충돌로 1천명 이상이 숨졌다.
이집트 야권 지도자 출신이자 전 부통령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도 지난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초래한다"고 유혈 진압을 비판한 뒤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