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베트남의 경우 한국인과의 국제결혼 비자심사에 필요한 한국어능력시험(토픽·TOPIK) 초급 1급 응시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나고 베트남 역시 비슷한 추세를 보이면서 한국어학원 설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 정부가 결혼이민(F-6) 비자 발급 심시기준에 한국어 능력을 추가, 오는 4월1일부터 시행키로 하면서 동남아 일대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번 조치로 한국인과 혼인하는 외국인 배우자들은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TOPIK 초급 1급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국가의 한국어 교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이들 시설마저 일부 대도시에 편중돼 있어 제도 시행취지를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동남아 주재 한국공관과 국제결혼 지원단체들은 이번 제도를 계기로 국제결혼 비율이 종전보다 30∼40% 이상 줄어드는 등 상당한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동남아에 한국어 학습 열풍…한국어 학원 설립 '러시' = 정부가 최근 결혼 이주민의 한국어 능력심사를 강화하면서 일부 국가의 한국어 능력시험 응시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올해 4월 치러지는 한국어 능력시험 응시자 수는 모두 2천293명으로 작년 동기 응시자 수 1천494명보다 무려 54.48%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필리핀의 같은 시기 응시자 역시 모두 281명으로 매회 150명 안팎에 그치던 응시율을 크게 웃돈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이 밝혔다.
한국어 학습수요가 이처럼 급증하면서 베트남 등 동남아 일부 국가에 한국어 학원을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고 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어 학원을 설립하기 위해 제도 시행 내역을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일부 지역에 한국어 학원을 설립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인과의 국제결혼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베트남 남부 껀터와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 등지를 중심으로 어학원 설립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의 경우 현지 한인회와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국어 강좌를 늘리는 등 현지 결혼이주 희망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 동남아 원정 단체맞선·속성결혼 등 병폐 사라지나? = 최근 수년간 국제결혼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정 단체 맞선과 속성 결혼 등 적잖은 문제점과 병폐들이 이어졌다.
국제결혼의 긍정적인 효과도 많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부 행태로 국가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는 지적마저 나오는가 하면 관련업체들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일부 동남아 여성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국제결혼을 택했다.
하지만 한국어능력심사를 비롯한 심사요건이 대폭 강화되면서 이런 문제점들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에 필요한 언어를 익히려면 나름 상당 수준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만큼 일정 부분 진정성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토픽 초급 1급은 한국 정착에 필요한 약 800개 단어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국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언어수준으로 평가된다.
국제결혼 지원단체와 해당 국가 관련기관들 역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영신 한베문화교류센터 소장은 "사전 홍보가 일부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결혼이주 여성들의 국내정착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 티 꾸이 베트남 양성평등위원장 역시 한국문화는 물론 한국남성들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 국제결혼 '막차 타기' 비자신청도 급증 = 한국어 능력 등 결혼 이주민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심사가 강화되기 전에 결혼이민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이 상대적으로 많은 베트남의 경우 올해 1월부터 지난 21일까지의 결혼이민 비자신청 접수건수는 모두 1천67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동기 접수건수 1천195건보다 무려 40.5%나 증가한 수치다.
필리핀 상황 역시 베트남과 비슷한 증가율을 나타냈다.
국제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의 민원과 우려가 이어지자 한국 법무부는 이달 31일까지 결혼신고를 마친 사람에 한해 올해 말까지 한국어 능력시험을 면제하는 임시조치를 시행하는 등 유연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 일각선 회의론도…"현실 감안한 보완책 필요" = 국제결혼 지원단체와 기관들은 정부의 이번 제도 시행과 관련해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회의론도 제기했다.
실제 우리나라 국제결혼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베트남과 필리핀 결혼 이주민 가운데 대다수는 한국어 학습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농촌지역에 거주한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국어 교육시설과 한국어 학원 등이 모두 '그림의 떡'으로 비쳐지는 이유다.
실제 베트남의 경우 한국 정부의 지정 한국어 교육기관은 한국문화원과 하노이 인문사회대, 호찌민인문사회대, 달랏대, 후에대 등 모두 8개 대학에 불과하고 이나마 모두 대도시에 집중됐다.
국제결혼이 가장 많은 남부 껀터와 북부 하이퐁의 경우엔 지정 기관이 전무한 상태다.
관측통들은 수요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지정 교육기관을 확대 지정하는 등의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연간 2차례 치러지는 한국어 능력시험 역시 실시횟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국가의 지원 등 공조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들 관측통은 지적했다.
◇ 결혼 이민자 격감할 듯…결혼중개업 '구조조정' 불가피 = 국제결혼은 지난 2012년을 기준으로 1년간 3만쌍으로 10쌍당 1쌍을 차지할 만큼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국제결혼도 이제 도시지역까지 확산되는 등 정착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전체 국제결혼 남성의 40% 이상이 대졸 출신으로 파악되는 등 국제결혼 부부의 학력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의 한국어능력 심사로 향후 국제결혼의 비중은 큰 폭의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정부는 이번 제도로 국제결혼이 최대 30%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현장의 국제결혼 지원단체는 이보다 훨씬 큰 폭의 감소를 점치고 있다.
이번 제도 시행을 계기로 관련업계의 구조조정 역시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결혼 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부 업체들이 생겨나면서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며 "전문성과 자본력이 부족한 업체들이 상당 부분 퇴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