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수사를 두고 '단디하라'는 말이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재선 의원은 12일 "검찰이 대통령이나 청와대, 국정원의 눈치를 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렸으면 한다"며 "김진태 검찰총장이 총장직을 걸고 국민이 OK할 때까지 수사를 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의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 촉구보다는 좀더 느슨한 형태의 요구인 셈이다. '남재준 국정원을 요절내던지, 아니면 못된 짓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수사하라'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도 익명을 전제로 "남재준 원장이 됐든, 국정원 차장이 됐든 누구도 예외 없이 수사를 했으면 한다"고 검찰에 주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사 지시는 차치하더라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12일 "국정원에 대한 검찰수사는 한 점 의혹이 안 남게 엄정하게 끝나야 한다"고 주문하는 등 여권은 오직 검찰 수사만 바라보고 있다.
검찰이 신속하면서도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내놔야만 선거 악재를 털어버릴 수 있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4월이 되면 곧바로 선거 국면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증거조작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수사하기를 바라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간첩 사건에 대해서도 명확한 증거를 찾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수사가 참으로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야당과 언론, 국민이 원하는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할 경우 검찰의 수사 의지가 없다는 등의 뭇매를 때릴 개연성도 있다며 자칫 덤터기를 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증거조작에 관여한 실무자들이 '윗선'의 관련성에 대해선 입을 닫아버리고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고집한다면 대공수사국장조차도 소환 수사를 벌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국정원이 간첩사건이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자 증거를 조작한 만큼 대공수사국장이나 국정원장이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 국정원 체계를 잘 아는 관계자의 말이다.
이를 고려할 때, 간첩사건 수사 실무자들이 대공수사국장이나 남재준 원장으로의 불똥을 차단하려고 해도 검찰은 소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대충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검찰은 여론을 등에 업거나 청와대의 힘을 빌어 대담한 결단을 해야 한다. 현직 국정원장, 그것도 비리가 아닌 본연의 업무라고 우길 수 있는 간첩사건 관련 증거조작에 대한 수사이기에 그 어떤 수사 때보다 신중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검찰의 한 검사장급 간부는 "국정원의 협조 없이는 참으로 어려운 수사"라면서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검찰도 남재준 국정원장이 생존을 위해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 하거나 비협조로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각도의 압박 작전을 모색하려는 것 같다. 이번 수사팀을 대검찰청에 꾸리고 수사력이 뛰어난 검사들을 증원 배치한 것도 그런 일단을 반영한다.
국정원의 남재준 원장 살리기가 '방패'라면, 이를 뚫기 위한 검찰의 '창끝'이 얼마나 예리한지가 이번 대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특히 특수부통으로 현역 검사 시절 수사 실패를 거의 겪은 바 없는 김진태 검찰총장으로선 더욱 중요하다. 본인은 물론이고 검찰의 명예가 걸린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95년)과 한보그룹 회장이던 정태수 씨의 입을 열게 해(96년) 여권의 실세 홍인길 전 총무수석, 야권의 실세 권노갑 민주당 고문 등을 구속한 당대 최고의 수사 검사, 김진태 검찰총장이 또 다른 권력기관장인 남재준 국정원장의 무릎을 꿇릴 수 있을 지, 큰 등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김진태 총장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원칙대로, 법대로 할 수 밖에 없다"면서 "검찰은 정치적, 정책적 판단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가겠다는 의미다.
'고향(경남 진주) 말인 단디하다의 의미 잘 알지 않느냐' 물었더니 "단단하게 하라, 철저하게 하라는 뜻"이라고 즉각 대답했다. 사전적 뜻으로만 내놓은 답은 물론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