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이성민 '방황하는 칼날' 법의 쓸모를 묻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영화화…"누구를 위한 법인가" 딸 잃은 아비의 절규

'비밀' '용의자 X의 헌신'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지 오래다.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메시지, 빠른 전개로 압축되는 그의 작풍이 제한된 시간 안에 영상으로 이야기를 그려내야 하는 영화 매체와도 일맥상통하는 까닭이리라.
 
다음달 개봉하는 정재영 이성민 주연의 '방황하는 칼날'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5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CGV압구정점에서 열린 제작보고회를 통해 살짝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 줄기를 충실히 따르되, 보다 보편타당한 주제의식을 길어 올리는 데 공을 들인 모습이다.
 
상현(정재영)은 하나뿐인 여중생 딸이 버려진 동네 목욕탕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는데도 "법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뻔한 이야기만 들을 뿐,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현은 범인의 정보를 담은 익명의 문자 한 통을 받고 적힌 주소가 있는 곳을 찾아나선다. 그곳에서 소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죽어가는 딸의 동영상을 보고 낄낄거리고 있는 한 소년을 발견한 상현은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그 소년을 죽인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 제작보고회가 5일 오전 신사동 압구정 CGV에서 열린 가운데 이정호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상현은 공범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무작정 찾아 나서고, 상현 딸의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억관(이성민)은 그 살해 현장을 본 뒤 상현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2008년 소설 방황하는 칼날이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됐을 당시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소년범죄에 맞춰져 있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들이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도록 한 '소년법' 말이다.

소설은 국가가 법으로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아는 소년들이 죄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반면 동명의 영화는 소년법이라는 특정 대상보다는, 사람들의 보편타당한 인식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법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듯한 인상을 준다.
 
이날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이정호 감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으로서 2008년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그러한 상황에 처한 아버지의 심정과 그를 이해하지만 쫓아야 하는 형사의 고뇌를 독백으로 표현한 글을 읽으면서 울컥했었다"며 "처음 이 작품의 연출 제안을 받고는 거절했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소재를 함부로 다루게 될 것이 우려스러웠다"고 전했다.
 
이어 "그 뒤 책을 다섯 번 정도 더 읽으면서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범죄율은 높아지고 제도는 변하지 않고 피해자는 더 큰 피해를 보는 구조가 방치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런 답답하고 무력하고 막막한 현실에서 시나리오의 마지막 신을 먼저 썼는데, 미약하지만 그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외쳐 주고 싶다는 느낌에 용기를 냈다"고 강조했다.
 
원작의 정서는 최대한 살리되,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내딛은 상현과 수십 년간 늘상 이러한 현실을 봐 온 형사 억관, 그리고 가해 소년 가족들과의 얽히고설킨 연결고리를 통해 영화의 주제가 맹목적인 분노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연출 포인트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 제작보고회가 5일 오전 신사동 압구정 CGV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정재영(위)과 이성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임하고 있다.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이 감독은 "원작을 읽으면서 우리 현실이라고 느꼈고 시나리오를 쓸 때도, 촬영할 때도 실화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적으로 찍자는 생각에 이야기 순서대로 촬영을 진행했고, 핸드헬드(사람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는 촬영법)를 활용했다"며 "핸드헬드는 등장인물들 모두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표현법으로 여겨졌다"고 했다.
 
딸을 잃은 피해자에서 딸을 해한 소년을 죽인 가해자가 된 아버지 상현 역을 맡은 정재영은 "시나리오를 처음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저도 한 아버지로서 연기하면서 자식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복수를 해야 하는지, 그때는 어떤 느낌일지와 같은 평소 상상도 못한,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들을 대하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이정호 감독과는 전작 '베스트셀러'(2010)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데, 시나리오를 봤을 때 답답하고 무거운 감정이 앞섰다"며 "이 영화는 범인을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는 한 인간과 법을 지켜야 한다는 형사의 마음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등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를 바라고 연기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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