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즘 고가의 예물시계나 패션용이 아닌 순수하게 ‘시간을 보기 위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드물다. 이렇게 손목시계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는데도 가짜 대통령 시계가 나도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순수한 기념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통령 시계를 권력과 힘의 상징으로 보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교통단속에 걸리고도 손목시계를 내밀며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과시했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나돌았겠는가?
역대 대통령 시계는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시계 자판에 대통령 서명이 들어있고,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 문양이 새겨져있다. 원가도 얼마 들지 않아 고급시계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이 시계는 대통령들이 지인이나 지지자들에게 선물용으로 사용했다.
대통령으로서는 큰 돈 들이지 않고 생색내고, 받는 이들에게는 신분과시의 하사품이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선물임이 분명하다. 권력을 잡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시계가 인기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대통령 시계는 종종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 전원에게 대통령 시계를 선물했는데, 홍문종 사무총장의 ‘잘 활용하라’라는 발언이 선거법 위반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YS시계를 자랑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 시계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전국 새마을 지도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선물한 것이 시초가 돼 역대 대통령들마다 기념 시계를 제작 선물로 사용해왔다. 청와대 뿐 아니라 한때 정부부처나 기업들도 저마다 시계를 선물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시계 선물은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주어도 별로 환영받지도 않는다. 실용성으로서 시계의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시계는 희소성에 권력의 상징성이 겹쳐 가짜가 나돌 만큼 여전히 인기 품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분 과시용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집권 6개월이 지나서야 대통령 시계를 만들었지만 선거법 시비에 휘말렸다. 제작 수량을 엄격히 통제한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인기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대통령이 바뀐다 해도 대통령 시계에 대한 수요와 열망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 시계를 시계 자체로, 순수한 기념품으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인식도 그만큼 성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