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통령을 디스하다니…구로동 농지강탈 데자뷰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2012년 7월 20일자 ‘기자수첩’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벌어진 ‘구로동 농지강탈 사건’을 다뤘다. 당시 기자수첩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서울 구로동 지역에서 살던 농민 200여명은 수백 년을 이어오며 가꾼 논과 밭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 육군성에 빼앗겼다. 해방이 되고 이 땅은 일본에게서 되찾은 귀속농지가 되었고, 토지개혁 조치로 농민들에게 되돌아왔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 정권이 이들의 농토에 ‘구로공단(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을 짓겠다며 농민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당연히 깡패들이 동원됐고 경찰이 거든 폭거였다. 농민들은 법에 호소했다. 그러자 군사정권은 농민들과 농민들 땅이라고 증언한 공무원들을 끌고 가 두들겨 팼다. 얻어맞은 농민들과 공무원 일부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지만 재판부는 농민들 땅이 분명하다는 여러 증거들을 근거로 농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농민들은 군사정권에 의해 다시 끌려갔다. 이번엔 소송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해 소송사기극을 벌였음을 자백하라고 두들겨 팼다. 그것을 근거로 군사정권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뻔한 억지임을 간파하고 다시 농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1961년 당시 구로공단의 모습. (방송 캡처)
군사정권은 다급해졌다. 1969년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노리는 마당에 구로공단 조성은 서둘러 추진할 사업이었다. 법무부에 ‘반드시 땅을 빼앗아내라’는 특명이 내려갔다. (법무부 장관에게 내려진 청와대 특별지시 문건이 증거로 확보됨). 농민들과 관련공무원들은 다시 검은 지프차에 실려 끌려갔다.
무지막지한 가혹행위 끝에 사기소송을 벌였다는 허위자백서에 서명을 하고서야 간신히 빠져 나왔다. 땅을 포기하지 않은 농민 등 40여 명은 소송사기죄, 위증죄로 기소돼 감옥에 갔다. 그러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농민들은 결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땅을 되찾기 위한 농민들의 소송이 시작됐다.
그날의 기자수첩은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2012년 7월 20일 오늘은 법원에서 그 재재심의 선고가 있는 날이다. 꼭 땅을 되찾으라 응원을 보낸다. 힘없는 농민을 짓밟은 지 꼭 50년 만에 이뤄지는 역사 바로 세우기이다. 농지강탈 50년, 이에 대해 참회와 사죄가 없다면 나라도 아니다”.

◈ 50년 지나도 변한 게 없어…

법원은 농민들의 억울함에 대해 정부 배상판결을 잇달아 내놨다. 비록 현시가가 아니라 구로공단 조성 당시의 가격으로 환산해 허름한 논밭 값으로 배상이 이뤄지지만 농민들은 받아들였다.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고 2014년 2월에 가장 큰 규모의 소송이 서울고등법원에서 마무리되었다. 농민 승소를 다룬 언론들의 보도 제목을 읽어보자.


“법원 죽은 소송 살려 사상 최대 국가배상 판결”
“구로공단 땅 찾기 농민들 47년 만에 승소”
“유신 때 빼앗긴 땅 1100억 국가 배상”

그러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지난 주말 이번 소송을 추진해 온 구로동 농지강탈 피해자 대표들이 검찰에 붙잡혀 갔다. 검찰은 이들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혐의는 변호사법 위반이다.

2014년 현재 구로공단의 모습. (방송 캡처)
2004년 이들 대표들 혹은 이들의 부모들은 숨죽여 살고 있던 피해자들을 찾아내 함게 하자고 설득을 시작했다. 그래서 구로동 명예회복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여기서 결백함을 인정받은 뒤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일을 도맡아왔다.

다른 생업을 갖지 못하고 월급도 안 나오는 일이니 집을 팔아 사무실 비용을 댔고 빚을 얻어 밀고 왔다.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은 총회를 열어 지금 가진 돈이라고는 없지만 재판에서 이겨 일부라도 배상을 받는다면 거기서 얼마씩이라도 떼어 이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합의와 계약이 문제가 됐다. 검찰은 이 과정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해석을 달리했다. 사건을 맡을 변호사를 알선하는 데 대한 대가로 돈을 주고받기로 했으니 알선수재이고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민 대표 중 2명은 고등법원까지 가 소송에서 패소했으니 피해자 대표직을 맡을 자격도 없는 제 3자 신분이어서 변호사법 위반이 명백하다고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대표의 활동비를 보전한 것이 브로커·알선이라 확신하는 검찰의 인식은 참으로 좁아 보인다. 증거나 소송자료가 미비해 재판에서 졌다고 피해자 가족이 아니고, 재산을 강탈당한 아버지가 시작한 소송추진을 아들이 이어 받아 뛰어 왔는데 당사자가 아닌 제 3자가 될 수 있을까? 더구나 대법원 상고심도 남아 있는 시점이다. 참으로 상식에 약하고 디테일에 강한 검찰이다. 그런 디테일한 능력으로 국정원 조작 증거 같은 걸 꼼꼼이 살펴 밝혀내면 얼마나 좋을까.

◈ 설마 검찰이 대통령을 디스하려고…?

힘이 없어 땅을 빼앗기면서도 정치깡패에게 얻어맞았다. 재판을 걸었다고 다시 끌려가 공권력에게 두들겨 맞았다. 재판에서 이기니 포기하라며 다시 끌고 가 두들겨 팼다. 50년 뒤에라도 국가위원회의 인정과 사법부 판결에 의해 땅을 되찾으니 이제는 브로커라며 끌고 가 가둬버린다. 불행 중 다행히도 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됐고 피해자 대표들은 풀려났다. 과연 검찰은 여기서 멈춰줄까?

이건 아니다. 검찰이 박대통령의 안티 세력이 아닌 한 이럴 수는 없다. 그 부친의 흉포했던 비리를 다시 들춰내 대통령을 구설수에 오르게 하고 지금의 정권을 토지강탈 정권에 비교되도록 데자뷰를 만들어내려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게 아니고 이것이 이 시대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고 권력에 의해 용납되는 정국이라면…이건 정말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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