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복지부가 불과 몇 달 만에 입장을 급선회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민주당 이언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국회 서면질의 답변서'(2013년 6월)를 보면 원격의료에 대한 복지부의 입장이 확인된다.
이 문건은 지난해 6월 27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제출된 것으로 상임위 의원들이 현황에 대해 문의한 내용을 복지부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원격의료 제도와 관련한 부처의 입장을 묻자 복지부는 "원격의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IT기술 등 산업적 관점외에도, 서비스 공급자․수요자가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확보가 우선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원격의료가 일자리 창출 등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다른 부처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 서비스 대상자는 대부분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으로 의료기기 활용이나 IT를 이용한 원격진료 예약, 화상상담 및 진료, 인터넷 결재 등에 취약한 상황이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산업통산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에서 원격의료 도입을 적극 추진하면서 압박을 해왔지만 이때까지만해도 복지부는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2008년 5월부터 서산, 보령, 강릉, 영양 지역에 보건소와 보건진료소간에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해왔는데 이를 강원도 전역으로 확대해 결과를 지켜본다는 것이다.
이는 시범사업을 충분히 한 뒤에 제도화, 즉 입법을 검토한다는 것으로 현재 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주장하는 선(先)시범사업과 같은 입장이다.
이처럼 지난해 6월 말까지만 해도 원격의료 입법화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던 복지부는 불과 넉 달도 안된 10월에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깜짝 입법예고한다.
경제부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중론을 펼쳤던 주무부처의 입장이 순식간에 뒤집힌 것은 물론 법 개정을 검토하는 시간도 짧았음을 알 수 있다.
복지부의 예상치 못한 입법 추진에 당시에도 입법예고 발표가 연기되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복지부가 10월 10일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법안을 발표한다는 사실이 미리 알려지자 의료계가 거세게 반대하면서 한 차례 일정이 미뤄져 결국 29일에 입법예고했다.
특히 공청회 한 번 열지 않는 등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기습적으로 입법이 추진되면서 의료계의 반발을 키웠으며, 결국 대한의사협회의 조건부 총파업 결의로 이어졌다.
복지부가 기존 입장을 바꿔 짧은 기간에 입법을 추진했다는 것이 문건으로 재확인되면서 타부처의 압력이나 윗선의 힘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
상당수 복지부 직원들은 시범사업을 통해 위험성과 효과성 등을 충분히 검증한 뒤에 법 개정을 추후에 추진하자며 당시 진영 전 장관에게 반대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언주 의원은 "국회에 제출되는 서면 답변서는 부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문건이기때문에 복지부가 애초에 원격의료 입법을 반대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며 "불과 몇 달 만에 복지부 입장이 급선회한 이유는 무엇인지, 윗선의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원격의료 제도화에 대한 요구는 산업계에서 계속 있어왔던 것이다"며 "(입장 변화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부 토론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입법이 추진된 것이다"고 해명했다.
한편, 의사와 환자 간의 IT 기기를 통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조만간 국회에 공식 제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