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EU와 협력협정 체결을 목전에 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쪽으로 끌어들였을 때만 해도 승리는 푸틴 대통령 쪽으로 기우는 듯했지만 갑작스럽게 야권이 권력을 장악한 지금으로선 푸틴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EU에 대응하는 경제통합체 구성에 광범위한 시장과 광물자원을 가진 우크라이나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단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150억 달러의 원조를 보류하며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150억 달러 중 30억 달러의 지원이 이뤄졌으며,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지켜보고 2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선을 그어뒀다.
EU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원조를 하겠다고 나선 터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입제한 확대 등의 조치를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원하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쫓겨나고 야권이 권력을 장악한 와중에서도 2004년 이른바 오렌지 혁명의 주역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가 전면에 등장해 아주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체로 서방 친화적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티모셴코이지만, 그녀는 총리 시절 러시아에 유리하게 가스수입 계약을 맺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복역했다. 그 당시 계약 당사자가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푸틴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 대통령이 2010년 우크라이나 대선 때 티모셴코를 지지했다는 소문을 부인하긴 했지만, 양쪽이 총리 재직 시절 좋은 협력관계를 구축했다"고 보도했다.
군사 개입도 푸틴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수전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일찌감치 군사 개입에 대해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상태다.
우크라이나가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 및 남부 크림반도와 친유럽 성향의 서부로 갈려 있는 점도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 선택을 하는 데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국 수습 과정에서 친러시아 지역이 차별을 받으면 푸틴 대통령이 해당 지역과만 독점적으로 경제적 협력관계를 맺는 등 조치에 나설 수도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여론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국민 상당수는 우크라이나에 여전히 깊은 유대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떨어져 나가 유럽 쪽으로 기우는 상황이 푸틴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은 24일자 FT 기고문에서 "러시아 및 EU와 공통으로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핀란드식 모델이 우크라이나에 가장 이상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WP는 푸틴 대통령에게 지금의 상황이 "중대한 차질이지만 완패는 아니다"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여러가지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고 이를 활용할만한 첨예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