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과 김현철, 영원한 동지는 없다

정치란 원래 무상한 것이어서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예도 허다하다.

최근 정치권 뉴스의 중심에 선 두 인물,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씨의 행보를 보면 어제 어깨에 올린 손을 오늘은 뿌리치는 모양새다.

김무성 의원이 '5.16은 혁명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김 의원을 맹비난했다.

김현철 씨는 "상도동계 출신 의원들이 자신들의 영달을 꾀할 뿐"이라며 "정말 쪽팔리지만 과거 상도동 사람이라던 김무성 의원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김 의원을 겨냥했다. 상도동계는 과거 YS계 인맥을 가리킨다.

앞서 김무성 의원은 지난 14일 전국포럼연합과 21세기분당포럼 주최 토론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5.16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보라"며 '혁명'으로 지칭했다.

김 의원은 이 발언과 관련해 "지난 1965년 김일성이 남한을 적화하려고 했으나 미국과 중국이 반대해 저지당했다"면서 "1975년이 돼서야 남한 경제가 북한을 추월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의원은 이어 "내 발언을 처음부터 다 들었다면 5.16 관련 말만 끄집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5.16으로 말미암아 내 개인적으로는 큰 피해를 본 집안"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YS 문하에서 정치를 시작한 상도동계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김현철 씨도 지난 198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김무성 의원의 주선으로 취직을 하기도 했고, 김 의원은 지난 1993년 YS가 집권하자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당시 YS와 현철 씨가 첫 조각 작업을 진행한 걸 고려할 때, 현철 씨의 지원이 없었다면 '젊은' 김무성 의원이 민정비서관에 임명되긴 어려웠을 거라는 게 상도동계 인사들의 전언이다.

문민정부 시절 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불리며 아버지 YS와는 동지적 관계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또 김 의원은 현재의 안전행정부인 내무부 차관으로 영전한 뒤 부산에 출마, 1996년 여의도에 입성할 정도로 그 후광을 톡톡히 입었다.

그런 두 사람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 2월 한보 청문회에 김현철 씨가 출석할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철 씨는 결국 한보 등으로부터 66억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YS는 그 이후로 '식물 대통령'이 되다시피 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서먹한 관계로 지내다가 본격적으로 갈라서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3월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탈당을 접고 백의종군을 선언할 때다.

김 의원은 지난 2012년 3월 새누리당 공천에 탈락할 당시만 해도 김덕룡 전 의원, 김현철 씨와 함께 탈당해 무소속 연대를 만들어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항하려 했다.

비록 '도원결의'는 하지 않았다지만, 나중에 김 의원은 결국 "우파 정권 재창출을 위해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아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김 의원의 당 잔류와 백의종군 선언으로 최병국 당시 의원 등 새누리당 낙천자들의 연쇄 탈당도 막을 내렸고, 공천 파문은 잠잠해졌다. 김 의원이 여권 분열의 싹을 잘라버린 셈이었다.

여권 한 관계자는 "김현철 씨는 그 이후로 사석에서 '김무성 의원이 배신을 때렸다'고 비난했다"며 "이번에 김 의원을 비난하는 트윗을 올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귀띔했다.

두 사람은 현 정부 탄생과 집권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사안마다 찬반으로 맞서면서 '지킴이'와 '견제인'으로 엇갈려왔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 이런 입장이 계속 유지되란 법도 없다. 아직 초반인 박근혜정부의 임기가 시나브로 지나갈수록 두 사람이 어떤 목소리와 색깔을 낼 지도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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